새로운 둥지를 준비하는 미생들에게
새로운 둥지를 준비하는 미생들에게
  • 김현희 기자
  • 승인 2015.03.01 1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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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양극화
 바둑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 바로 ‘두집’을 완성시키는 일이다. 그 중 우리가 드라마와 웹툰으로 접해왔던 ‘미생’은 앞서 말한 두집을 완성시키지 못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태를 말할 때 쓰인다.

 케이블 채널 tvN에서 방영된 ‘미생’은 첫방송부터 최종회까지 고공행진하는 시청률과 뜨거운 관심으로 우리 사회, 직장인들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그린 작품이었다. 그 내용을 잠깐 살핀다면, 어려운 가정 형편에 고등학교도 겨우 졸업한 20대 청년 ‘장그래’가 대기업 인턴사원으로 입사해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 드라마로 우리 사회가 공감하고, 누군가 긁어주길 바랬던 부분을 보여주고 있다.

 ‘나’만의 슬픔이 아닌, ‘우리’의 슬픔을 보여주면서 많은이들로 하여금 공감을 얻어냈던 미생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현장에서 발로 뛰는 직장인 뿐만 아니라 취업에 도전하는 취업준비생들까지 저마다의 이야기는 모두 고달프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유명대학, 토익, 어학연수, 자격증 등 완벽한 준비를 갖추어야만 하고, 모르는 것 없이 모든것을 할줄알아야 하며, 매사에 완벽하기까지 해야하는 ‘만능주의’에 벽에 갖힌 사람들과 더불어, 출신 지역과 대학에 따라 보이지 않는 혹은 더 잔혹하게 보이는 차별에 멍드는 청춘들을 보여주면서 직장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취업을 막연히 바라만 보는 세대에게도 ‘청춘’을 단편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직장생활을 준비하는 대부분의 취업준비생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하는 이야기가 있다. “회사생활을 하고 싶지만, 정말 회사 생활이 저럴까?”라고 말이다. 꿈을 찾아가야하는 청춘은 자신을 배불릴 수 없는 ‘꿈’앞에 무너져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남들이 걷는 길을 억지로 걸어가려 노력하며,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는채 적당한 틀에 찍어져 나가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꽉막힌’청춘이 바로 오늘날 젊은이들의 모습이다. 한편의 드라마를 보면서도 격한 공감을 하고 자신의 미래와 꿈에대해 다시 생각하는 젊은이, 그리고 더 나아가 모든 청춘들은, 마치 신데렐라처럼 월요일 자정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다시 현실에 굴복하고 만다.

 현실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신이 손해를 보는걸 알면서도 타협을 보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우리 사회 청춘은 이미 ‘양극화’가 거세진 상태라 할 수 있다. ‘보통’에 들기위해 미친 듯 자신의 꿈을 잊은채 미친 듯 달리기만 하는 경주마부터, 자신의 꿈을 먼저 찾고 청춘에게 지금의 길이 옳지 않다며 꿈을 찾으라 말하는 청춘들까지 다양하지만, 이 비율을 따져보자면 9:1로 꿈을 찾은 사람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이 글을 쓰면서 지금의 ‘나’는 어떤가에 대한 생각을 참 많이 해봤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역시 또 다른 미생들과 다를바 없다는 입장에 깊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이게 된다. 초등학교시절부터, 아니 돌이켜보자면 훨씬 그 이전부터 우리는 경쟁에 익숙해져 왔다. 운동회로 등수를 정하고, 순위권에 든 친구들은 형형색색의 목걸이를 걸어오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자연스레 경쟁에 익숙해져 왔다. 그러면서 우리는 경쟁이 낳는 ‘불안감’만을 가진채 지금까지를 살아온 것이다.

 그저 이기려고만 하는 삶, 나에대한 만족은 하지 못한채 다른이를 꺾어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삶에서, 아무리 열심히 한다 그러더라도 실패를 경험하는 사람이 나온다는 사실에, 그리고 그 실패자가 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슬퍼하면서도 또다른 누군가를 실패자로 만들려고 한다. 그렇게 우리는 전쟁을 준비하는 ‘스파르타’의 제군처럼 계속해서 무의미한 스펙으로 몸을 무장했고 결국 우리에게 남은건 상처뿐이다.

 통기타를 치고 잔디밭에 앉아 세상을 이야기하던 대학을 즐기는 20대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우리는 끈임없는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야 하며, 이와 동시에 성적까지 잡아야 한다. 꿈을 찾기에는 너무나 고달프게 만드는 ‘딜레마’의 늪에 빠진 것이다.

 앞으로 뭘 하면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할때마다 한없이 작아지는 내 자신을 바라보며 끝없는 우울감에 빠지는 오늘이다. 오늘은 내가 살기위해 누구와 또 경쟁해야 하며 또 그런 경쟁을 부축이는 사회에 아무런 소리도 하지 못한채 또다시 사회에 맞춰갈 뿐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열정페이’등 청춘을 무시하는 배부른 일부 어른의 이야기가 마치 정설인양 쓰여지고 있는 오늘이다. 아직도, 20대 뿐만 아니라 40대, 50대 청춘들까지도 허리가 휘어지는 고통을 부여잡고 ‘먹고살기 위해’고생하고 있다. 꿈을 잃어버린 사회, 완생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우리의 ‘미생’은 완성될 수 있을까? 무한한 고민만을 남긴채 오늘도 손에 쥐어든 이력서를 바라보며, 힘없는 한숨만을 들이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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