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노올
미스터 노올
  • 황혜영 교수
  • 승인 2015.09.01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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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을 만드는 ‘윌리엄 서머셋 모옴 ’
 문학 작품 속 인물이 때로는 실제 인물만큼 친근하게 느껴지고 마음에 여운을 남기는 경우가 있다. 서머셋 몸의 단편 <미스터 노올Mr. Know-All>에 나오는 막스 켈라다가 내게 그런 인물 중 하나다. 처음 이 작품을 읽게 된 것은 고 2 방학 보충수업 때 같은 반 친구가 영어 독해를 함께 하지 않겠느냐며 복사를 해서 준 글에서다. 그때 이미 ‘미스터 노올’을 특별하게 생각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잊고 있다가 대학 영어 교재에서 ‘미스터 노올’이라는 제목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때 느낀 반가움은 마치 예상치 못하게 우연히 옛 친구와 마주쳤을 때 같았다.
 
 켈라다 씨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부터 쭉 좋아해온 것처럼 믿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물론 미스터 노올의 인물에 특별한 감정을 가지게 된 것은 단순히 잊고 있다 다시 만나서만은 아니다. 더 본질적으로는 <붉은 산>에서 여(余)가 “가련한 인생아. 인종의 거머리야, 가치 없는 인생아. 밥버러지야. 기생충아!”라며 했던 삵에게서 어느 순간 숭고한 정신을 보게 된 순간 느꼈을 법한 한 사람에 대한 인상의 충격적인 반전을 미스터 노올 켈라다 씨에게서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세계 대전이 막 끝난 후 샌프란시스코에서 요코하마로 항해하는 여객선에서 일어난 일이다. 화자는 막스 켈라다라는 사람과 같은 객실을 쓰게 되었는데, 켈라다 씨는 모든 사람의 모든 일에 아는 체를 하고, 상대방이 자신의 생각에 설득되기 전에는 이야기를 끝내는 법이 없으며 자기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은 결코 하지 않는다. ‘미스터 노올’은 잘난 체 하고 오만한 그에게 비꼬는 의미가 없지 않게 사람들이 붙여준 이름이다. 어느새 배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고 그보다 더 미움을 받는 사람도 없게 되었다. 특히 미국 영사관 소속으로 1년간 고향에 홀로 두었던 아내를 데리고 고베로 가는 중인 람제이 씨는 그를 영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

 어느 저녁 담화가 진주에 관한 화제로 넘어가게 되었는데, 람제이 씨와 켈라다 씨가 열띤 토론을 하다가 람제이 씨 부인의 목걸이가 진짜인지를 두고 100달러 내기를 하게 된다. 부인이 남편에게 18달러 주고 산 가짜라고 한 목걸이를 켈라다 씨가 진짜라고 장담했기 때문이다. 켈라다 씨는 람제이 씨가 억지로 부인에게서 풀어 건네준 목걸이를 확대경으로 세밀하게 살펴본 후 승리를 확신하며 입을 열려는 순간 백짓장처럼 하얗게 질려 호소하는 듯한 부인의 눈빛과 마주치고는 사람 앞에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한다. 내기에 이긴 람제이 씨는 잘난 척하는 켈라다 씨의 교만을 꺾어주었고 소문은 순식간에 배에 퍼져 척척박사는 모든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객실 문 밑에 놓인 100달러 지폐가 든 켈라다 씨에게 온 봉투는 마지막 반전을 예기한다. 진주가 진짜였는지를 궁금해 하는 화자에게 자기에게 만일 아름다운 아내가 있다면 1년이나 혼자 뉴욕에 남겨 두지 않겠다는 켈라다 씨의 마지막 대답은 내기의 결과 뒤에 감추어진 진실을 암시해준다.
 
 자신의 승리를 직접 확인하고도 자신의 한 마디에 달린 람제이 부인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자기 위신의 추락을 무릅쓴 막스 켈라다의 모습에서 잘난 척만 하는 척척박사의 오만 그 밑바탕에 녹아 있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배려를 읽게 되는 순간 이제까지 그에 대해 가졌던 인상은 순식간에 바뀌게 된다. 다른 사람의 실수를 감싸주기 위해 그로서는 가장 견디기 힘든 ‘실수’를 인정하는 수모를 감내할 줄 아는 그에게 ‘미스터 노올’은 더 이상 잘난 척 하는 오만에 가해진 야유가 아니라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혜안에 붙여진 정당한 타이틀이다. 미스터 노올을 떠올리게 될 때면 우리 주변에 왠지 그와 같은 사람이 있을 것 같아 찾아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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