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다 큰애가, 무슨 게임을 좋아해?
너는 다 큰애가, 무슨 게임을 좋아해?
  • 박준영 칼럼니스트
  • 승인 2015.09.01 16:4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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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결정체가 되어버린 오지랖
 키덜트(Kidult)라는 말을 알고 있는가? 성인이 되어서도 어린이의 전유물인 장난감이나 만화에 관심을 가지고 취미생활을 하는 대중문화 언어라고 하는데, 필자는 이 키덜트라는 표현이 차별을 당연시하고 억압을 당연시하는 차별과 혐오의 상징중 하나인 역대급 쓰레기라 생각한다.

 우선적으로 언론이 제시하고 있는 ‘아동의 전유물’에 대해 생각해보자. 게임, 영화, 만화, 장난감 등 셀 수 없이 많다. 자, 필자가 ‘셀 수 없이 많다’라고 한 부분은 역시 언론이 정의하는 ‘어른의 전유물’에도 많이 나타난다. 자동차, 부동산, 술, 담배, 폭력, 포르노 등의 수많은 자극 컨텐츠는 어른에게만 허락되는 ‘어른의 전유물’로 규정된다. 자연적으로 어른이 되면 이와 같은 자극컨텐츠를 이용해야하고 게임이나 만화 등을 즐기는 사람들을 ‘철부지’라는 단어를 쓰며 무시하는 이 역겨운 행보는 이미 언론뿐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의 머릿속에 뿌리내려 있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보자. 내가 좋아하는 내용물을 사기 위해, 정당하게 돈을 벌고, 빠듯하지만 저축을 하고 오랜 고생 끝에 세계에서 단 10개밖에 없는 고가의 피규어를 구매했다. 그런데 그를 보고 집에서 돌아오는 대답은 뭘까? “야, 너는 티비에 나오는 이상한 애들도 아니고 그런거 모으냐?”, “어머, 이거 예쁘네, 우리 애한테 줘 그냥, 네가 어른이잖아”라는 하나같이 폭력적인 도돌이표뿐이다. 개인의 소유물이자 정당한 대가를 빼앗아 가는 것도 모자라 ‘그런거’라는 저급함의 대명사로 표현하는 건 우리 사회에 새롭게 대두되는 세대갈등의 대명사이자 새로운 형태의 폭력과 혐오주의다.

 이러한 문제는 가격을 알던 모르던 계속되기 마련이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면 “그래! 애 좀 줄 수 있지, 넌 어른이 왜 그 모양이니”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뱉고 가격이 예상했던 가격보다 많이 비싸다면 “거짓말 하지 마! 무슨 장난감이 그렇게 비싸!!”라던가 “어머 얘는 미쳤나봐 무슨 장난감에 그런 돈을 쓰니? 돈이 썩어나!”라는 역시 말도 안 되는 훈수를 듣기 마련이다. 자동차와 토지 등 성인의 전유물이자 성인의 소유물을 같은 내용으로 빼앗는다면 지금쯤 법정에서 서로를 마주하고 있을 일이지만, 단지 ‘아동’의 전유물로 낙인 시키며, 폭력을 정당화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지극히 비정상적이다.

 정부는 내수시장이 침체된다는 이유로 입버릇처럼 ‘내수시장 활성화’를 주장하고 있고, 우리는 정말 지겹도록 그 이야기를 들어오면서도 정작 내수시장이 활성화되고 있지는 않다. 정부는 그러면서 또 “하……. 시민들이 지갑을 열지 않고, 돈을 가지고 있으려고만 한다”는 말도 않되는 결론을 낸다. 내수시장을 활성화하기 이전에 국가 산업에서 가장 많은 금액을 벌어들일 수 있는 수단중 하나인 ‘문화’컨텐츠에 죽이기를 시작한 것 역시 정부이며, ‘폭력성’을 들먹이며 게임산업에 문을 닫게 만들고, 독과점 사업이나 특정 ‘사상’이 들어간 영화에 지속적인 세뇌마케팅을 통한 영화산업의 획일화 뿐 아니라 소비시장에서 돈을 쓰는 ‘소비러’들을 한심한 어른인 ‘키덜트’라 부르는 사회까지 형성하는데, 타인의 고통을 모르며 죽게 만드는 사람을 ‘싸이코패스’라 부르는데, 문화산업 다 죽여 놓고 이제 와서 “왜 죽었지?”라 물어보는 게 딱 그 모습이라 생각한다.

 도라에몽을 모으며, 자신의 취미생활에 행복을 느끼는 연예인 심형탁씨를 보며 언론은 그를 ‘오타쿠’라고 정의하고 철없는 어른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정작 본인은 누구보다 행복해한다. 그는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정말 행복해하고 자랑스러워한다. 당연한 것이다, 자신의 소득으로 자신의 취미생활을 ‘건전’하게 하는데 누가 뭐라 하는가? 아, 지금의 언론과 어른이다. 이들의 오지랖은 날이 갈수록 ‘건전한 소비’에 제약을 걸고 있으며, 이와 같은 정당한 소비에도 된장녀, 김치녀, 오타쿠 등의 혐오스러운 말을 갖다 붙이며, 사회 양극화와 폭력성을 정당화하려 한다. 그러면서도 수십 억대 도박이나 음주운전 등 사회적인 ‘범죄’를 일으키는 공인들의 복귀에 대해선 ‘착한복귀’라는 역겨운 표현으로 이를 무마하려하니, 예능에서도 ‘도덕성’이 있어야한다며, 출연진의 하차를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진짜 우리 사회 ‘도덕성’이 결여 된 건 누구를 지칭하는지 모를 일이다.

 친근하다는 이유로, 내가 하지 않고 잘 모른다는 이유로, 그 어떠한 이유로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고, 지금 우리 사회에 ‘키덜트’라는 단어 자체가 정당한 취미생활과 활동에 대해 폭력을 가하는 사회 분위기를 가장 잘 표현하는 거칠고 폭력적인 단어다.

 ‘건전함’을 결여시키려하며 ‘폭력’의 수단을 그에게 권하는 당신의 모습을 한번 눈여겨보길 바란다. 당신은 종말을 막으러 온 터미네이터가 아니라, 그저 종말의 결정체인 ‘T-1000’정도 될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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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의물결 2015-09-05 13:53:04
트위터에서 보고 들어왔는디 정말 감동받았어요
좋은글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