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행복한 저상버스
모두가 행복한 저상버스
  • 박진규 교수
  • 승인 2015.09.01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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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금요일 오후 전주에서 진천으로 이사 오신 30년 전 같은 장학재단 선배를 만나러 터미널로 가려고 시내버스를 탔다. 내가 좋아하는 청주시내버스 832번이다. 이 버스는 내가 가야할 곳을 거의 다 지나가면서도 한 가지 더 장점이 있다. 바로 이 노선의 대부분이 저상버스라는 점이다.

 저상버스는 일반버스보다 두 배나 더 비싼 버스이다. 요금이 아니라 그 구조 때문에 제작비가 비싸서 차 가격이 두 배나 된다고 한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편하게 타고 내릴 수 있도록 계단을 없애고 구조를 변경한 탓에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서 그런 듯하다.

 여하튼 역시 심하지는 않지만 장애인이라 나는 계단이 없는 저상버스를 선호한다. 지난 겨울 일반버스에서 내리다가 발목을 다쳐 인대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한 후에 가능하면 저상버스를 탄다. 무릎이 좋지 않은 노인들도 내 어머니도 저상버스를 좋아하신다.

 금요일에 832번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가 도청 앞에서 차가 평소보다 오래 정차해 있어서 사람들이 웅성거리기에 문간을 보았더니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내려야하는데 쉽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건겅할 때 같았으면 바로 달려가 내려드렸겠지만 나도 왼쪽이 불편한 장애인이라 도움을 주지 못하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데, 나이든 아저씨가 먼저 밖으로 내리더니 앞으로 가서 운전사에게 그 장애인이 내리도록 발판을 내려달라고 도움을 요청한 후 다시 돌아와서 휠체어를 잡고 당겨서 내려 주고 다시 탔다. 그것을 지켜보는 우리 모두는 그분에게 고마운 눈빛과 어떤 미안한 마음을 가졌겠지만, 나는 교육자로서는 마음이 좀 무거웠다. 왜냐하면 그 옆에 20대 젊은 대학생으로 보이는 건강한 젊은 사람들이 여러 명이 있었는데 도움은커녕 휠체어가 돌기 어려운데도 통로를 막고 서서 쳐다보기만 했기 때문이다.

 교육은 미래의 행복한 삶을 위한 희망을 가르치는 일이다. 즉, 행복한 미래를 위하여 어리고 젊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가르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독일의 슈베어트의 말처럼 모두를 위해 학교는 “행복부터 가르쳐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한 “희망을 가르쳐야”한다고 생각한다. 교육이 경제라는 돈의 논리로만 포장이 되어 문화와 사고, 문학, 역사, 철학의 의미를 상실하여 희망마저 잃어가는 이 시대에 희망은 다시 교육의 새로운 키워드가 되어야한다. 인류역사에서 지금까지의 교육이 희망이 키워드였지만 산업혁명 이후 물질문명을 가반으로 한 수·과학을 바탕으로 한 경제논리에 자탕을 둔 자본지상주의는 희망을 주는 교육의 대안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최근 다시 인문학과 고전에 대한 붐이 일고 있는 현상은 참으로 반가운 변화라 할 수 있다.

 다시 저상버스로 돌아와서 그 젊은 학생들을 보며 나 역시 성서, 불경, 사서삼경을 배운 동서양의 고전 숭배자이지만 정부와 대학의 경제논리에 이끌려 어릴 때부터 친가와 외가의 지금까지 내 인문학 뿌리를 잊고 살아가는 듯하여 반성이 되었다.

 신학기부터라도 다시 인문학적 뿌리로 돌아가는 노력을 하면서 다시 더불어 살면서 희망을 주는 행복한 학교를 만드는 노력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모두가 행복한 저상버스를 만드는 마음으로 사는 사회를 만드는 희망을 가르치는 행복한 학교를 위하여 더 노력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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