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가을과 짧았던 사랑
같은 가을과 짧았던 사랑
  • 김현희 기자
  • 승인 2015.10.13 13: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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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그린 영화, 만추
  하늘에선 붉은 낙엽으로 낭만이 내리고, 긴팔 옷으로 한껏 멋을 낼 수 있는 가을이 왔다. 그 아름다움이 사계 중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지만, 너무나도 짧아서 안타까운 계절인 가을. 오늘은 그 짧은 아름다움과 닮은 영화인 슬픔과 그리움의 상징인 <만추>를 소개하고자 한다.

만추, 그 말 그대로 늦은 가을을 말하고 있다. 영화의 제목처럼 그 내용 역시도 많이 늦어버린 오늘 같은 가을에 딱 맞는 영화다. 하루가 멀다 하고 추위가 빨라지는 계절, 가을은 아직 그 모습을 감추기 싫어하지만 겨울은 성큼성큼 찾아와 가을을 이름을 짧게 한다. 영화의 주인공들 역시 짧았지만 강렬했다.

성별부터 성격까지 섬세한 부분 하나하나가 모두 다른 에나와 훈은 시애틀로 가는 버스에서 처음 만났지만 훈에게 에나는 무표정하고 반응 없는 중국여자, 에나에게 훈은 귀찮게 말을 거는 실없는 한국남자일뿐이다. 그저 서로에게 귀찮은 존재로 스쳐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인연은 어떻게든 시작된다고 그랬던가, 7년 만에 만난 가족들 틈에서 더 외로워진 에나와 고객의 사정으로 시간이 비어 버리게 된 훈은 우연스럽게도 하루를 함께 보내게 된다.

짧고 급작스럽고 어눌한 데이트였지만, 에나는 겨우 이름만 알게 된 훈에게서 가족도 주지 못한 편안함을 느낀다. 서로 다른 국적으로 인해, 대화가 통하지 않으면서도 귀 기울여 들어주는 그 덕에 처음으로 자신의 과거와 상처를 똑바로 바라보고 털어낼 용기를 낸다. 분명히 다른 사람인데도, 오늘 처음 만난 사람임에도 자신보다 더 편안한 또 다른 자신의 존재인 페르소나와의 만남을 경함한 에나는, 훈과의 하루로 인해 인생을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된 것이다.

영화 만추는 이처럼 찰나의 기억이 평생 이어질 수 있고, 하루에 불과했더라도 그 사랑을 만나기 전과 후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미국에 온지 2, 겨우 입에 붙기 시작한 서툰 영어로는, 사랑밖에 팔 것이 없는 남자 훈. 교포누님을 상대하는 그 습관처럼 호기심으로 찔러본 낯선 여자 에나에게 처음으로 진짜 사랑을 느낀다. 어제 처음만나 에나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기 위해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는 훈. 스스로 사랑을 찾고 지켜주려는 남자로 다가서는, 깊어진 그를 지켜보는 것은 즐거움 중의 하나인 셈이었다.

교도소로 돌아가야 할 시한은 3, 누군가에게는 길 수 있지만, 이들의 사랑에는 한없이 짧을 수밖에 없었던 이 시간동안 시작한 남다른 사랑. 커다란 액션도, 잔혹한 자극도 없는 영화에서, 오로지 두 사람의 미세한 감정표현과 미묘한 얼굴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생각과 빠져듦을 자연스럽게 부르고 있었다.

이들의 처음을 보자. 서로가 서로를 원치 않아했다. 그저, 빨리 이 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던 두 사람의 관계에 누군가 자신의 삶으로 억지로 들어오려 할 때 반사적으로 쳐내는 무심함과 차가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어나는 사랑이라 믿은 순간 끌어안는 열정까지. 언제 비가 올지 모르고 늘 짙게 깔려있는 안개로 유명한 시애틀의 날씨는 감정을 갖는 게 사치라고 생각하는 듯 한 에나를 닮았다.

반면 안개가 짙을수록 햇빛이 더 소중하듯 에나와 훈이 함께 보낸 그 가을의 하루도 잡지 않으면 안 될, 놓칠 수 없는 사랑으로 다가온다. 둘이 함께 거니는 시애틀의 곳곳, 자욱한 안개 속으로 떠오르는, 시장 통의 좁은 골목길과 그리스 레스토랑, 문 닫은 놀이공원들의 풍경은 두 사람의 만남의 의미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주인공으로 다가온다.

만추는 큰 상처로 인해 마음을 닫은 여자 에나와 그 여자가 만난 선물 같은 남자, 훈의 이야기 이다. 누군가를 그리워하거나 사랑이 시작되는 그 순간이 생각난다면 이 영화를 권한다. 늦은 가을 고독과 낭만의 애틋한 사랑을 담고 있는 만추는 선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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