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지내며
추석을 지내며
  • 변선재 기자
  • 승인 2015.10.13 13: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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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려서부터 나는 추석 때마다 일손을 도우며 자라왔다. 아쉽게도 이번 추석에는 일이 생겨서 일손을 도울 수 없었고, 그 덕에 내게 올해 추석의 시작은 제사를 지내는 당일이 되었다. 유치원 때부터 추석특선영화를 보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송편을 빚고 동그랑땡을 만들어 왔기 때문에 그런지 더 아쉬웠다. 어렸을 때 나는 유독 추석과 설날을 기다렸다. 물론 용돈이 큰 비중을 차지하긴 했지만, 얼마를 받던 어차피 나에게 남는 돈이라고는 3만원 내외였다. 지금도 내가 그토록 추석을 기다렸던 이유를 명확하게 말 할 수 없다. 굳이 짐작하자면,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내가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그동안 못 보던 친척들과 담소를 나누고 함께 음식을 만드는 것이 즐거웠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추석은 점점 간소화되고 있다. 차례 음식을 파는 곳도, 그것을 사는 사람도 많아 졌고, 또 어떤 사람들은 제사를 지내는 대신 그동안 가족들과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들을 대신해 여행을 가거나 저마다 상황에 맞게 시간을 보낸다. 나는 사회가 변해가는 것을 추석이 다가올 때마다 느낀다. 물론, 우리가족도 이런 추세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었다. 어렸을 때 거창하게 준비하고 절차를 따지던 차례가, 이번 추석 때는 간단하게 다 같이 절을 올리는 것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얼굴을 맞대고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음식을 만들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일상에 억눌려 가족들과 하지 못했던 뜻 깊은 시간을 더 보낼 수 있기에,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민족의 정체성을 잃는 퇴보라 생각할 수도 있고, 반대로 새로운 흐름에 맞춰 진보적인 방향으로 변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나는 어느 의견에도 동의하지 않으며 이에 대해서는 딱히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가족들과 함께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체공휴일 시행으로 올 해 추석연휴가 길어졌기 때문에, 각자의 시간을 보낸 가구가 다른 해보다 더 많았을 듯싶다. 내 경우에는 차례를 지내고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용인 공원 근처에 있는 공동묘지다. 올해 1월에 잠드신 외삼촌이 계신 곳이었다. 외삼촌은 말을 잘 하고 유식했으며, 재치도 있으셨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장례식장에 외삼촌의 제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고 얼마나 유능했던 분인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어머니는 외삼촌이 돌아가신지 9개월이 지났음에도, 외삼촌 이야기가 나오면 눈시울을 붉히신다. 그럴 때마다 내 가슴도 덩달아 뭉클해진다. 사진 속 외삼촌은 지금 성인 여성의 주먹보다도 작은 내 발을 물고 있는데,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외삼촌이 돌아가셨다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용인 공동묘지 근처 도로는 거의 마비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정체가 심했는데, 떠나간 사람을 가슴에 담아두고 있는 사람을 기리는 것은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사람이 죽는 순간은 잊혀 질 때라고들 하는데, 정말 맞는 말 같다. 문득, 마음 속 깊은 곳에, 수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석의 유래는 명확히 밝힐 수 없지만, 고대로부터 있어 왔던 달에 대한 신앙에서 그 뿌리를 짐작 할 수 있다고 한다. 밤이 두려웠던 옛날, 만월 가운데 가장 밝은 815일에 많은 사람들이 그 아래에서 축제를 벌이고 놀이를 즐기며 화합의 장을 가졌던 것이 현제의 추석으로 전해지는 것으로 추측된다. 오늘날에 이르러 추석뿐만 아니라 다른 명절의 형태가 변한 것이 사실이지만, 지나간 사람을 떠올리고 그를 추모하며 소중한 사람들과 화합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이것도 진정한 의미로 추석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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