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이어지는 ‘국정교과서’논란으로 언론과 SNS, 그리고 우리의 대화주제는 연일 뜨겁기만 하다. 언급과 통과 그리고 교과서 제작까지 정부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다는 듯 속전속결로 진행되어가는 오늘의 정부를 보면서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에 갈등과 역사왜곡으로 시대를 붕괴시키려는 청와대와 각계 대표들의 행보가 원하는 장난감을 가지지 못해 때를 부리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지난 서원대신문에서도 소개했던 내용인 ‘국정교과서’는 말 그대로 국정(國定)으로 ‘교육과학기술부’가 저작권을 가지고 만드는 교과서로 그 내용이 국가에 있어 변동될 수 있는 교과서다. 물론, 국정교과서 논란은 지난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언급이 된 바 있지만, 지금과 같이 독립운동가인 김구선생을 테러리스트로 만들고, 일본에 강제로 끌려간 위안부를 ‘자원’이라는 표현을 쓰며 일본의 국내 지배를 찬양하는 내용을 말하지 않았으며, 고(故)박정희 대통령과 전두환 대통령을 평하는 내용에서 ‘방법은 잘못됐지만, 결과는 좋았다’는 책임감 없는 독재 미화를 말하는 부분은 아니었다. 결국 오늘날 언급되는 국정교과서는 독재 정부의 미화와 친일활동의 찬양이 섞인 ‘위험한’교과서가 되어버린 셈이다.
본래의 교과(敎科)활동이란 그 말 그대로 교육의 과정을 가르친다는 부분인데, ‘바른 교육’을 논하며 그 내용을 국가에서 새로이 정하고 끊임없는 역사논란을 잠재우겠다는 정부의 ‘취지’는 좋다. 단순히 취지만 놓고 보자면 좋다. 하지만, 취지와 다른 왜곡된 내용과 현 정부와 박근혜 대통령 본인 일가에게 유리한 내용으로만 교과서를 세운다면, 그 어찌 참된 교과를 할 수 있다는 말이며, 오히려 이러한 논란으로 인해 세대 간의 갈등은 더욱 심해질 것이고 수능출제 논란, 세대를 넘은 시대간의 갈등, 같은 세대내의 갈등 등 불필요한 갈등만을 불러올 뿐이다. 즉, 정부를 넘어서 시대 그리고 시민들끼리 내전이라도 하라는 의미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부분이라는 말이다. 싸움의 불꽃은 언제나 산불처럼 작은 불에서 시작하기 마련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왜 우리는 ‘이념’의 갈등으로 봐야하는가? 진보와 보수, 청년과 노년, 남자와 여자로 나누려 드는가? 왜 우리는 ‘내편’이 아니라면 모두 적으로 간주해야 하는가? 현 정부에서는 교과서의 국정화를 반대하는 시민들을 ‘빨갱이’라고 규정하며, 국가 전복을 막기 위해서라도 공권력을 확대시키고 그 정도를 강화해야한다고 말한다. 애당초 배움의 시작이자 가장 정론으로 쓰여야하고 거짓 없이 직필로 쓰여야하는 교과서가 국가의 소유가 되어 정권의 입맛대로 주무르겠다는데 민주화를 어렵게 따낸 이 나라에서 과연 누가 좋아할까를 묻고 싶다. 아, 유독 국정교과서에 미화되고 찬양시되는 몇몇 인물을 우상화하는 세력이라면 그럴 수 있다.
사람에게 한 가지 흠이 있다면, 반값 등록금도 없었고, 국가 채무금 환산도 없었고, 민생과 물가 안정도 없었고 그냥 아무것도 없었던 정부에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 우리는 수 없는 배신을 당해왔고 이제는 어떤 통수를 쳐서 우리를 피 흘리게 할지 그 참신함에 감탄하며 욕하기도 힘들어진 경지에 오르고 말았다. 우리는 얼마나 더 힘들어 해야 하는가? 현재의 시급으로는 한 끼의 점심 사먹기도 힘들고, 고용불안과 취업난은 여전하며 집에 귀가하면서 자식들 주려고 따뜻한 통닭 한 마리 사려고 해도 프랜차이즈 치킨 한 마리가 2만원을 넘기는 정신 나간 물가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힘들어도 해결의 기미조차 그리고 국민의 이야기 한마디 들어주지 않는데, 지지율 떨어진다고 징징대는 저 언론의 소리를 정색하고 보는 우리의 태도가 잘못되었다고 절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수 없이 잘해오던 사람이 한 번의 실수로 나락을 타는 무서운 세상을 살고 있고, 아이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자신에게는 아무 책임이 없다는 교직원, 자본에 미쳐 남의 돈을 갈취하던 방송인, 부하직원의 말만 믿고 몰락의 길을 어깨너머로 보는 대표 등 필자 역시 수많은 실수를 하는 사람들을 여태껏 봐왔고 그들의 끝은 모두 나락으로 떨어지는 결과를 보아왔다. 이쯤이면 사람뿐 아니라 정치와 사회 역시 모두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하나의 ‘젠가’게임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몇 차례의 실수는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실수가 곧 무너짐의 기초가 되는 것이며 무너지고 난 뒤 다시 쌓아 올릴 때만큼 허무한 게 없다는 이야기다.
국정교과서 논란과 더불어 정부의 논란이 젠가와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심지어 이번 논란은 젠가에서 가장 위험한 부분을 빼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휘청대는 정부와 사회를 보며 우리는 어디로 피해야할지 이제는 감도 오지 않는다. 그저 오늘이 무섭기만 하다.
오늘도 떨어지는 출산율을 오르게 하기 위해 강제 미팅을 시키는 게 좋지 않을까라는 소리를 하는 언론을 보고 있다. 먹고살기 힘들고 세상사는 게 힘들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지도 못하는 이 슬픈 시대에 국민을 강제 교배라도 시키려는 걸까? 국민의 생각이 전해지지 않고, 살인사건의 피의자가 아이라는 이유로 존중받아야 하지 않느냐는 추악한 소리가 나오는 지금, 오늘도 야근을 하는 내 모습과 마주한다. 이렇게 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지금의 현실에 뜨거운 한숨을 내쉬며, 제발 교육받는 새싹들의 미래가 안전했으면 하는 마음에 글을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