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위기와 사람의 무늬
인문학의 위기와 사람의 무늬
  • 서원대신문사
  • 승인 2016.10.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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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대학 사회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인문학의 위기가 커지고 있다. 인문학의 위기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한국 대학 사회만의 문제도 아니다. 실용학문을 중시하는 나라인 미국에서도 지난 1980년대 이후 인문학의 위기가 시작되었으며, 철학의 본고장인 유럽에서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서구 문화를 받아들이기에 주저하지 않았던 일본에서도 일찍부터 인문학이 활로를 개척해야 한다면서 인문학의 위기인지 인문학자들의 위기인지 선을 그어 판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사회적 공감대를 얻었다.

인문학의 위기에 관한 담론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신보다 물질이 중요하고 나아가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는 주장으로 귀결된다. 그동안 정부에서는 인문학을 육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BK사업’, ‘HK사업’, ‘CORE사업’(인문역량 강화사업) 같은 국책 연구 사업을 진행했다. 인문학을 진흥한다며 엄청난 예산을 투자했지만 그 후 인문학이 얼마나 위기에서 벗어났는지 의문이다. 대학들은 정부 예산을 유치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고, 교육부 관료들은 예산 집행권을 쥐고 대학 관계자들을 길들여온 측면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인문 정신은 사라지고 경제논리나 배금사상만 육성된 듯하다.

좀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대학가에 불어 닥친 반값 등록금 제도도 인문학의 고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반값 등록금은 정치인들이 표를 얻기 위해 포퓰리즘(대중 인기 영합주의) 차원에서 제시했던 정치 구호인데, 이는 결국 우리나라 대학을 황폐화시킬 것이다. 대학을 경영하는 데도 재원이 필요하다. 세상의 모든 물가가 오르고 있는데, 대학 등록금만 반값으로 고정시키고 절대 인상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폭력적인 논리다. 외국에 유학을 갈 경우에는 우리 대학 등록금의 10배 이상에 해당되는 돈을 거리낌 없이 갖다 바치면서도 국내 등록금은 고정되어야 한다니, 우리나라 대학에서 가르치는 교육 내용도 외국의 10분의 1 수준이란 말인가. 현재 우리나라의 대학 등록금은 외국에 비해 싸도 너무 싸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대학 입장에서는 대학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학과 위주로 경영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학생들은 이런 견해를 대학 등록금을 무조건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편의적으로 해석하고 오해하지 않기 바란다. 현재의 반값 등록금 제도가 계속되고 대학 등록금을 영원히 동결시켜야 하는 상황에서는 지금까지 폐과된 학과 이후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형태의 학과 통폐합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현실을 직시했으면 싶다. 길게 보면 대학 등록금 인상에 유연한 시각을 갖는 것이 인문학 관련 학과 통폐합을 막는 버팀목이 될 수도 있다. 세상의 변화에 눈을 감고 전공의 울타리에 갇혀 있던 인문학계에서도 반성해야할 대목이 많지만, 정치인들과 그들의 오지랖에 호응했던 여론도 인문학의 위기를 더 부채질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연방 정부에 교육부라는 정부 부처가 없는 미국에서는 대학 교육의 질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정부 수립 이후 수 십 년 동안 그토록 교육을 진흥하고 육성해온 우리나라 교육부는 앞으로도 대학에 구조개혁의 칼날을 들이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은 어떻게 해야 경제논리나 배금사상에서 벗어나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문제를 100세 인생의 시대라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국가 기구가 인문학을 양적으로 지원한다고 해서 인문 정신이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은 깊이 있는 성찰을 통해 질적 성장을 모색했을 때만 회생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고전 100권을 읽게 하는 커리큘럼을 운영함으로써 인문학(liberal arts)의 전통을 지켜온 것으로 유명한 미국의 세인트존스칼리지의 사례는 단언컨대 감동적이다. 깊은 울림도 있다. 인문학의 위기는 어른들의 잘못에서 비롯되었다. 어른들의 잘못은 잠시 접어 두고, 깊어가는 가을에 인문학(人文學) 서적을 읽으며 사람의 무늬(人紋)를 새겨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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