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몇 년 전부터 우리대학에서 매학기 마다 “행복의 과학” 이란 대규모 교양강좌를 맡고 있다. 이 강좌가 당초의 예상보다 인기가 높은 탓에 한편으로는 기쁘면서도 동시에 점점 더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행복의 과학” 수강생들 중 다수는 처음에는 “행복” 이란 말과 “과학” 이란 말이 과연 어떻게 결합될 수 있는 지 궁금해 한다. 그로부터 행복에 대한 주관적인 감상보다는 객관적 연구를 기초로 한 지식을 나누어주는 강좌를 들으면서 점차 이들의 궁금증이 풀리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한가 곧, “주관적 안녕감” (SWB)을 토대로 구축된 세계 행복 데이터베이스(www.worlddatabasecofhappiness.cur.nl)에 따르면, 2000~2009년 146개국 평균 행복지수에서 가장 상위에 있는 나라들은 단연 덴마크(8.3), 노르웨이 (7.9), 핀란드(7.9), 스웨덴(7.8) 등 북유럽 국가들이다. 북미의 경우 미국(7.4)은 캐나다(8.0) 보다 행복도가 다소 낮고, 선진국인 호주(7.7)와 뉴질랜드(7.5) 도 제법 높은 행복도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아직 경제는 제대로 발전하지 못했으나 타고난 낙천적 성격으로 인해 사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문화인 중남미의 멕시코 (7.9), 브라질(7.5), 과테말라 (7.2), 콜롬비아 (7.7) 등은 서구 선진국들과 거의 비슷한 높은 행복수준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최근 사실상 제1세계의 생활수준을 누리게 된 동아시아의 발전국가들인 싱가포르(6.7), 일본(6.2), 대만(6.2) 그리고 한국(6.1)은 공통적으로 현저하게 낮은 행복지수를 보여주고 있다.
왜 수직적 가치가 지배적인 유교문화의 동아시아 선진국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행복지수를 보일까? “행복의 과학” 맨 첫 시간에 전체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간단한 설문을 통해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에 대해서 자유롭게 답하게 한다. 그러면 그중 대다수인 절반 이상은 대체로 “그저 그렇다”라고 말하곤 한다. 이로써 한국인은 일종의 “문화적 DNA”로서 자신이 현재 얼마나 행복한 지에 대해서 서양인들과 달리 적극적이기보다는 대체로 소극적으로 표현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행복연구의 기반인 “긍정심리학” (positive psychology)에서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행복의 150퍼센트는 유전적 설정값이 결정한다. 우리는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환경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겨우 10퍼센트다. 그러니 여기에 너무 집착할 필요가 없다. 나머지 40퍼센트는 자신에게 달렸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실천하면 행복지수를 고유한 행복의 기본 수준 즉, “행복설정값” (happiness set point) 이상으로 높일 수 있다.
사회학의 중요한 개념인 “준거집단” (reference group)은 특정 개인이 태도와 믿음을 형성하고 행동할 때 비교나 판단의 기준이 되는 집단이다. 모든 조건이 자기와 비슷한데 자신의 처지가 다른 사람에 비해 열등하다고 생각할 때 느끼는 불만을 “상대적 박탈감” 이란 하는데, 어떤 집단을 준거집단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실제 행동도 다르게 나타나며 “주관적 행복감”도 달리 나타날 수 있다.
동아시아 이웃 국가의 대부분의 사람들과 비슷하게 한국인 역시 상대적으로 낮은 행복감을 갖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그동안 고속 경제 성장에 따른 소득불평등을 줄이려는 분배가 미흡한 것에 기인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은 전통적인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인해 평소에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고 비교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종종 일컬어진다. 세계 모든 사람의 행복을 연구하는 “행복의 과학”의 눈으로 바라볼 때, 비교를 통해 계속 불만을 토로하기보다는 현재 있는 자리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개인과 사회 모두를 위한 무엇보다도 중요한 행복의 지름길이다.
원고 | 사범대학 사회교육과 김성건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