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청춘, 이런 영화 어때? 독립영화 ‘파수꾼’
흔들리는 청춘, 이런 영화 어때? 독립영화 ‘파수꾼’
  • 서원대신문사
  • 승인 2016.09.0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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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평>
기태는 극 중 인물 중 가장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기태는 수평적이지 않은 관계 속에서 자신이 가진 나약함을 극복하려 한다. 희준과의 갈등 속에서 동윤이가 자신의 행동을 이해해주길 바랬지만 자신의 기대와 반대인 모습의 동윤을 보고 매우 힘들어한다.

희준이는 동윤이와 기태는 중학교 때부터 친구이지만 자기는 고등학교에 와서야 친해졌기  때문에 그 둘의 관계는 다를 거라고 느끼는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희준이 전학간 뒤 기태가 직접 찾아와 자신이 가장 아끼는 야구공을 선물해주는 것을 보고 그건 아니였구나 라고 느꼈다.

희준이 전학간 뒤 기태에게는 동윤이 밖에 없었지만 동윤의 행동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그 때 만약 동윤이 기태의 손을 잡아줬다면 기태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을텐데라는 생각도 하였다.

하지만 영화 마지막에 ‘니가 최고다, 친구야’라고 독백하는 동윤의 모습을 보며 그 대사 안에 모든 죄책감, 미안함 등 슬픈 감정들을 느낄 수 있었다.

<왜 파수꾼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파수꾼이라는 영화 제목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파수꾼의 뜻은 무언가를 지키는 사람을 뜻한다.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으나 잘 생각해보니 등장인물들은 각자 지키고자 하는 것이 있었다. 희준은 ‘자존감’을 위해 기태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동윤은 우정과 사랑을 지키기 위해 기태와 멀어진다. 그렇다면 기태가 지키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기태에 대해서는 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 영화 내에서 가장 알 수 없는 캐릭터가 바로 기태이기 때문이다. 기태는 희준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다가도 순식간에 돌변해 폭력을 행사한다. 또한 동윤을 제일 각별하게 여기면서, 반대로 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만다. 고심 끝에 기태가 우정과 ‘짱’이라는 권력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기태에게 있어 우정은 소중한 것이 분명하지만, 자신이 최고라는 것을 인정받을 수 있는 짱이라는 자리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짱이냐 우정이냐 답을 찾지 못하는 기태의 혼란은 관객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기태가 무엇을 지키려 했는가에 대해서는 정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기태는 최고이길 인정받길 원하면서 마지막 장면까지 야구공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영화 속 야구공의 의미는?>
기태와 동윤, 희준서 서로 각별한 친구사이다. 그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간이역에 들려 캐치볼을 한다. 캐치볼은 공을 서로 주고받아야 하기에,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운동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야구공을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갈등이 심화돼 희준이 캐치볼 멤버에서 빠지게 되면서 캐치볼을 하는 장면은 점차 짧아진다. 그리고 동윤 마저 기태에게 등을 돌리게 되고, 기태는 혼자 간이역에 서서 야구공을 한 없이 바라본다.

희준에게 폭언과 폭력을 일삼던 기태는 희준이 전학 가자마자 그의 집 앞까지 찾아간다. 그러고는 대뜸 희준에게 야구공을 선물한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누구에게도 절대 주지 않겠다던 야구공이다. 이는 혼란스럽기만 하던 영화 내에서 기태의 진심을 확인 할 수 있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그 후 야구공은 희준으로부터 동윤에게, 그리고 정상적인 형태는 아니지만 다시 동윤으로부터 기태에게 전달된다. 야구공은 어긋난 우정 사이에서도 돌고 돌았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이전과 같은 관계가 되지 못 할지언정, 희준과 동윤은 떠난 기태의 모습을 떠올리며 우정의 진정성을 확인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야구공의 상징이 우정이 아닐 수 도 있지만, 야구공이 항상 세 사람 사이에서 돌고 돌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파수꾼 총평>
희준, 기태, 동윤이는 중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이다. 그러나,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셋은 쉽사리 감정의 문을 열지 못한다.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마음의 문을 닫았으며, 상대에게 의도하지 않았던 상처를 준다.

영상 속 이들의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가 뒤죽박죽 섞여있고, 실제와 허상의 경계도 허물어져 있다. 그리고 화면 밖에서 그런 상황을 바라보는 우리는 다소 불편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잠시 숨을 가다듬고 생각해보자. 당장 평면적인 이 화면조차 불편하게 느껴지는데 입체적인 우리의 삶을 이해할 수 있을까? 역설적이게도 파수꾼을 봐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파수꾼은 불완전한 우리의 존재에 대해 정곡을 찌른다. 그러나 그 ‘불안전함’을 조금씩 극복해 나간다면, 언젠가는 영화 속 마지막 장면과 같이 우리를, 그리고 상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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