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쓰레기통 속에서 장미는 피지 않는다
[사설]쓰레기통 속에서 장미는 피지 않는다
  • 사설
  • 승인 2011.06.03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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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에게 만약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어느 때로 돌아가고 싶은지 물어 본다면 나는 주저 않고 대학시절로 돌아가겠다고 말 할 것이다. 그 정도로 대학은 나에게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대학에는 자유와 낭만, 희망과 꿈이 차고 넘쳤으며, 그 시절 너무도 좋은 친구들을 거기서 만났고, 또 아픈 사랑도 해 봤다. 물론 밤새워 고민도 많이 했다. 독재의 암울한 시대가 우리를 힘들고 지치게 했고, 불투명한 미래가 괴롭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좋았다. 그 곳이 주는 푸근함에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거의 학교에서 살았던 것 같다. 그래서 교수를 직업으로 가지게 된 것을 너무도 큰 행운으로 알고 산다. 여전히 그 시절의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으니까.


그런데 날이 갈수록 이 공간이 싫어지고 있다. 내가 그리 좋아했던 바로 그 곳이.


강의실 바닥뿐만 아니라, 학교 곳곳이 심지어 엘리베이터 안에도 자판기 종이컵과 각종 캔이 굴러다니고, 교정의 이곳저곳은 학생들이 뱉은 침으로 범벅이 되어 있다. 복도에 아무렇지도 않게 침을 뱉거나 담배꽁초를 던지는 학생을 보면 그 용감함(?)에 저절로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다.


우리는 쓰레기다. 거대한 쓰레기통 속에 들어 있는 쓰레기다. 학교가 쓰레기통이나 마찬가지니 그 안에 있는 우리야 당연히 쓰레기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쓰레기통에서 어찌 아름다운 향기가 나겠으며, 거기서 어떻게 장미가 필 수 있을까? 거기선 악취가 나기 마련이며, 병균이나 번식하고 바퀴벌레나 꼬이는 것이 정상이다. 하니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어느 누가 이런 공간에서 머물고 싶겠는가?


‘대충 졸업만 하면 서원대하곤 안녕이다.’ 혹시 이런 생각을 가진 학생이 있다면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니 빨리 생각을 바꾸기 바란다. 생년월일처럼 죽는 날까지 따라다니는 것이 바로 학력이다. 즉, 어느 학교 출신이냐는 것이 평생을 따라 다닌다는 것이다. 가끔 보면 스스로 자신이 졸업한 학교를 비하해서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높아지는 것이 절대 아니다. 누워 침 뱉기에 불과하다.


학교의 수준은 교수도, 시설도 아닌 학생의 수준이 결정하며, 학교의 수준이 높아지면 저절로 졸업생의 수준도 높아진다. 학교를 쓰레기통 정도로 생각하면 우리 모두는 쓰레기로 전락하며, 학교를 보물처럼 아끼면 우리는 보물이 된다. 난 좋은 학교의 교수로 살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가 더 나아지길 바란다. 학생들이 학교를 졸업 후 사회에 나가, 또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아 기르면서 당당하게 ‘서원대 출신’임을 밝힐 수 있는 좋은 학교가 되길 바란다.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좋은 대학은 학생들이 그 곳에서 행복을 느끼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대학이다. 여러 가지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우리가 머물고 싶은 아름다운 대학은 조금의 노력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럴러면 최소한 쓰레기통 수준은 면해야 하지 않겠는가.


쓰레기통에서 장미는 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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