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그 조화를 꾀하다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그 조화를 꾀하다
  • 서원대학교 신문방송사
  • 승인 2019.06.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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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인포그래픽=임지은 기자)
(인포그래픽=임지은 기자)

 

지난 4월, 헌법재판소는 임신한 여성이 낙태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형법 269조 제1항 ‘자기낙태죄’와 의사가 임신한 여성의 동의를 받아 낙태 시술을 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을 내린다는 형법 270조 제1항 ‘의사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불합치란 해당 법률이 사실상 위헌이지만, 즉시 폐지할 시 생길 수 있는 법의 공백이나 사회적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규정을 한시적으로 유지하고 국회에 법 개정까지 일정 시한을 주는 결정이다. 

헌법재판관 9명 중 4명이 헌법불합치, 3명이 단순위헌, 2명이 합헌 의견을 내 최종 7대 2의 의견으로 낙태죄가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이는 지난 2012년 8월 헌법재판소에서 재판관 합헌 4대 위헌 4의 의견으로 낙태죄 합헌 판결을 내린 지 6년 8개월여 만에 판단을 번복한 것이다. 1953년 9월 처음 규정된 이후 많은 논란을 낳던 낙태죄는 이로써 66년 만에 사라지게 되었다. 

현행법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여성의 자기 낙태 및 의사 등의 낙태를 전면 처벌하고 있다. 이에 헌법재판소는 결정문에서 “현행법(모자보건법)에는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 갈등 상황이 전혀 포섭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한, “필요한 최소한의 정도를 넘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어 침해의 최소성을 갖추지 못했고,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공익에 대해만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해 법적 균형성의 원칙도 위반했다”고 위헌 판결의 근거를 내세웠다.

헌재는 “자기결정권이 보장되려면 임신한 여성이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에 관해 전인적 결정을 하고 그 결정을 실행함에 있어 충분한 시간이 확보되어야 한다”며 낙태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시점에 대해 ‘임신 22주 내외에 도달하기 전’을 기준으로 제시했다.

그에 덧붙여 단순위헌 의견을 냈던 3명의 재판관은 “임신 14주 무렵까지는 어떠한 사유를 요구함이 없이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숙고와 판단 아래 낙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낙태죄 규정 이래, 우리 사회는 낙태죄의 존속 여부에 대하여 각 계층이 첨예하게 대립의 의견을 표해 왔다. 여성 단체 등이 대표하는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종교 단체 등의 ‘태아의 생명권’ 사이에서 무엇을 더 우선해야 할지, 견해차를 좁히지 못한 채 논란을 이어 온 것이다.

2012년 헌재에서는 생명권이 선험적이고 자연법적인 권리로서, 그 무엇보다 가장 우선해야 할 기본권으로 그 성장 상태와 관계없이 태아에게도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던 바 있다.

올해 4월의 낙태죄의 헌법불합치 판결은 언뜻 기존의 판결에 정면으로 반하는 결정을 내린 것처럼 보이지만, 그 요지를 자세히 살피면 여성과 태아의 권리 사이에 대하여 한쪽의 손을 들어준다기보다는 양쪽의 조화를 꾀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인간이 자신의 생활영역에서 인격의 발현과 삶의 방식에 관한 근본적 결정을 자율적으로 내릴 수 있는 권리인 자기결정권에는 임신한 여성의 출산 여부 역시 포함된다. 현행법이 임신한 여성에게 임신의 유지·출산을 강제하고 있어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것은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태아 역시 생명권의 주체이므로 국가는 의무적으로 태아의 생명을 보호해야만 한다. 이번 판결에서 헌재는 태아의 생명권을 보장하면서도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지 않는 방향으로, 임신한 여성이 임신의 유지 및 출산 여부에 대하여 전인적 결정을 내리고 실행함에 있어 충분한 기간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서 여성 개인의 임신 사실 인지와, 자신의 사회적·경제적 상황 및 그 변경 가능 여부의 파악, 국가의 지원정책 정보 수집과 충분한 숙고 끝에 임신 중단을 결정했을 때 실제 수술이 이루어질 때까지의 시간이 충분히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부분을 고려하였을 때, 헌재에서 제안한 낙태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시점인 ‘임신 22주 내외에 도달하기 전’은 태아가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점이자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에 대해 여성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에 충분한 시간으로 판단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성장 정도에 무관하게 태아의 생명권만을 보장했던 기존 판결과 달리, 해당 시기까지의 낙태에 대해서는 국가가 생명보호의 수단 및 정도를 달리 정할 수 있다는 것이 이번 ‘낙태죄 헌법불합치’의 핵심이다.

헌재는 태아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국가의 천명은 임신한 여성의 신체적, 사회적 보호를 포함할 때 실질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태아의 생명을 진정으로 보호하는 동시에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지 않는 근본적 해결책은 낙태죄의 실행이 아닌, 임산부가 처한 사회적·경제적 상황에 대한 사전·사후적 조치 및 출산·육아 정책의 강화일 것이다.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현행 낙태죄 조항은 2020년 12월 31일까지 유지된다. 그 이전에 국회가 법 조항을 개정하지 않을 시 낙태죄 규정은 완전히 폐지된다.

이제 우리 사회에는 이와 같은 방향으로 정책과 제도를 마련하고 뒷받침할 입법의 과제가 남았다. 여성과 태아, 양측 모두에서 더 이상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을 안정된 후속 조치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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