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의 출생지와 다양한 설
허준의 출생지와 다양한 설
  • 김쾌정 허준박물관장
  • 승인 2011.09.05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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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 등재로 더욱 유명해진『동의보감』. 이 책의 저자 허준 선생은 소설, 드라마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러나 실제의 허준은 그 지명도에 비해 역사적 자료가 영세하므로 사실의 왜곡과 허구가 매우 심하다. 서자라는 신분적 한계와 관련 자료의 부족으로 부모, 아내, 출생, 출생지, 내의원 입사, 저술활동, 스승, 신체해부, 유배지, 돌아가신 곳, 초상화 등등 여러 면에 있어서 실제 사실과 다른 내용이 알려져 역사를 왜곡하고 있을 뿐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혼란을 야기 시키고 있다. 이번호에서는 허준의 출생지에 대해서 바로 살펴보고자 한다.

허준의 출생지는 친어머니, 출생년도 등과 맞물려서 매우 다양한 설이 있다. 특히 지방자치제가 자리를 잡아감에 따라 많은 지역에서 연고권을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허준의 출생지는 경기도 김포군 양천현 파릉리로서 현재 서울시 강서구 등촌동 능곡마을이다.『의림촬요』·『내의선생안』·『교회∙내의∙계사선생안』등에도 ‘陽川人’으로 표기되었고, 양천허씨대종회의 주장도 같다. 양천현은 예로부터 제차파의(齊次巴衣), 양평(陽平), 양천(陽川), 공암(孔巖), 파릉(巴陵) 등으로 불리었다. 허준은 양평군(陽平君), 아들 허겸은 파릉군(巴陵君)의 군호(君號)를 받은 것도 이에 연유하였다. 군호(君號)는 임금이 왕자, 종친, 훈신을 군(君)으로 봉할 때에 내리던 칭호이며, 그 사람의 본관이나 태어난 곳을 참조했다.

 경기도 파주, 장단설은 현재 허준 묘소가 경기도 파주시 진동면 하포리 민통선 내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개의 묘소는 거주지에서 하루거리 내에 위치하는 것이 상례이므로 이러한 주장을 펴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양반사회에서 엄격하게 지켜져 온 ‘상피제도(相避制度)’에 대한 인식의 부족에서 나온 주장이다. 상피제도는 출신 지역의 지방관으로는 절대 임명하지 않았으며, 친인척과도 같은 관서에서 근무하지 않는 제도였다. 이는 관료체계의 원활한 운영과 권력의 전횡을 막을 목적으로 시행하였다. 허준의 아들 겸(謙)이 파주 목사(坡州牧使)를 역임하였으므로 허준이나, 아들 겸은 이곳에서 출생하지 않은 것이 이로써 확실하다.

전남 장성설은 1927년에 간행된 『장성읍지』에 근거한다.
『장성읍지』‘충절’조에 “허준은 양천인이다. 자는청원...”(규장각, 古 4797-1-1-3)
이 기록으로 유추하여 ‘허준의 외가가 장성이며, 지방 수령으로 온 허준의 아버지가 이곳에서 소실을 얻어 아이를 낳았을 것으로 가정한 것이다. 그러나 허준의 아버지가 이곳에서 수령을 지냈다던가, 어머니가 이곳 출신이라는 근거 자료가 없다.

전남 부안설은 허론이 부안군수를 역임할 때 낳았다는 주장으로 1537년 어머니 상을 당해 관직에서 일시 물러났는데, 허준이 1539년 출생을 전제로 한 주장이므로 이 곳 또한 가능성이 희박하다.
전남 나주설은 똑같은 이름의 8촌형이 나주에서 출생한 것을 두고 한때 이곳을 거론하기도 하였으나, 맞지 않은 주장이다.

평안도 용천설은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에서 아버지가 용천부사를 역임할 때 출생했다 는 주장인데, 그 뒤 다시 이를 극본으로 삼은 드라마 <허준>에서 재론하여 많은 독자, 시청자들이 그렇게 믿고 있는 설인데, 여러 정황상 맞지 않는다.

경남 산청설은 할아버지가 경상우수사를 역임하였고, 할머니는 진주류씨이므로 진주, 산청 인근에서 출생하였을 것이라는 주장인데, 할아버지가 경상우수사 자리를 떠난 지 오래 지난 뒤인데다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에는 허준의 아버지가 부안 군수직을 수행하던 때이므로 이 역시 틀린 주장이라 하겠다. 『소설 동의보감』에서는 허준이 용천에서 죄를 짓고 어머니와 피신하여 성장한 곳이 산청이었다. 이곳에서는 허준보다 125년 뒤에 실존했던 유이태(劉爾泰)와 가공인물 류의태(柳義泰)를 혼동하고 있을 뿐 아니라 류의태 동상, 류의태 묘를 건립한데 이어 최근에는 진주류씨 족보에 실존인물도 아닌 류의태를 등재하기에 이르렀다.
(조선일보. 2009. 12. 18자). 이 쯤되면 역사왜곡이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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