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훈 소설 '광장' - 우리의 광장을 찾아서
최인훈 소설 '광장' - 우리의 광장을 찾아서
  • 서원대신문사
  • 승인 2019.06.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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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랑 교수의 인문학 이야기

<서문>

'메시아'가 왔다는 이천 년래의 풍문이 있습니다.

신이 죽었다는 풍문이 있습니다. 신이 부활했다는 풍문도 있습니다. 코뮤니즘이 세계를 구하리라는 풍문도 있습니다.

우리는 참 많은 풍문 속에 삽니다. 풍문의 지층은 두텁고 무겁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역사라고 부르고 문화라고 부릅니다.

인생을 풍문 듣듯 산다는 건 슬픈 일입니다. 풍문이 만족지 않고 현장을 찾아갈 때 우리는 운명을 만납니다.

운명을 만나는 자리를 광장이라고 합시다. 광장에 대한 풍문도 구구합니다. 제가 여기 전하는 것은 풍문에 만족지 못하고 현장에 있으려고 한 우리 친구의 얘깁니다.

아시아적 전제의 의자를 타고 앉아서 민중에겐 서구적 자유의 풍문만 들려줄 뿐 그 자유를 ‘사는 것’을 허락지 않았던 구정권하에서라면 이런 소재가 아무리 구미를 당기더라도 감히 다루지 못하리라는 걸 생각하면서 빛나는 4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에 사는 작가의 보람을 느낍니다.

- 『새벽』, 1960년 10월

 

『광장』의 서사 구조

1. 주인공 이명준은 석방 포로가 되어 중립국으로 향하는 배 안에서 다른 석방 포로들과 갈등을 느낀다. (현재)

2. 이명준은 철학과 3학년으로 아버지 친구의 집에 살며, 그들 덕분에 생활의 여유를 누린다. 영미의 파티에서 윤애와 첫 만남이 이루어진다. (과거)

3. 고고학자 정 선생과 대화에서 이명준은 한국의 정치 광장은 추악한 밤의 광장, 탐욕과 배신과 살인의 광장이고, 경제 광장은 사기와 허영의 광장이고, 문화의 광장은 헛소리가 만발하는 광장이고, 남한의 광장은 죽은 곳, 텅 빈 곳이며, 밀실만이 가득하다고 말한다. (과거)

4. 광복 후에 월북한 아버지의 대남 방송으로 이명준은 경찰서에 가서 폭력적인 심문을 받고, 여름 동안 윤애의 집에 머무르다가 월북한다. (과거)

5. 이명준은 중립국으로 향하는 배 위에서 김과 몸싸움을 한다. (현재)

6. 북한에서 이명준은 정신적인 억압을 받고, 발레리나 은혜를 만나 사랑하게 된다. (과거)

7. 이명준은 조선인 꼴호즈에 대한 기사로 신문사에서 자아비판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은혜의 모스크바행을 만류하지만 모스크바로 떠난다. (과거)

8. 이명준은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공산군이 되어 서울로 내려온다. 서울에서 태식을 고문하고, 윤애를 능욕하려다가 그만두고 태식과 윤애를 풀어준다. (과거)

9. 전쟁터에서 은혜와 재회하고, 유엔의 공격을 받아 낙동강 일대는 피로 물들고 은혜는 전사한다. (과거)

10. 전쟁이 끝나고 전쟁 포로가 된 이명준은 중립국으로 갈 것을 요청하고, 중립국으로 가는 배 위에서 사라진다. (현재)

『광장』은 남과 북이라는 정치 현실에서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그로 인한 ‘광장’과 ‘밀실’이라는 한정된 관념의 테두리에서 논의되어 왔다. 필자는 이명준의 심리 세계를 욕망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하였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고립된 인간의 불안정성으로 ‘도피의 메카니즘’을 설명한다. 개인에게 안정감을 주던 관계가 끊어지고, 완전히 분리된 실체로서 외부 세계와 직면하면, 무력감과 고립감의 참을 수 없는 상태를 극복해야 하는 두 개의 과정이 나타난다. 하나는 정서적이고, 감각적이며, 지적인 능력을 진정으로 표현하며, 성실성과 독립성을 포기하지 않고, ‘적극적인 자유’로 나아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자유를 포기하는 것으로 개인적 자아와 세계와의 사이에 생긴 분열을 소멸시킴으로써 고독감을 극복하는 것이다.(E. 프롬, 2009)

『광장』에서 이명준은 자아와 세계의 분열에서 생긴 고독감을 극복하기 위해 현실의 자유를 포기하고, 환상 속의 자유를 선택한다. 이명준은 끊임없이 현실세계에 적응하려고 시도한다.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현실 적응에 실패를 반복하면서 현실 도피 경향을 보인다. 중립국으로 향하는 배 위에서 푸른 바다를 유영하는 자유를 꿈꾸며 환상 세계로 떠난다.

인간은 끊임없이 무엇인가 욕구하고, 그 대상을 찾아 헤맨다. 그 대상을 찾아 원하는 것을 이루면 안주해야 하지만, 또 다른 대상을 찾아 떠난다. 이명준은 현실 적응에 실패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선다.

이명준의 욕망은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에 의한 대상의 환유 과정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이명준이 추구하는 첫 번째 욕망은 어린 시절 충족되지 못한 어머니의 사랑이다. 어머니로부터 충족되지 못한 사랑은 성인이 되어서도 그를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두 번째 욕망은 윤애에 대한 사랑이다. 윤애는 폭력적인 남한 사회에서의 도피처이고, 그녀는 그의 욕망을 어느 정도 충족시켰다. 그러나 그는 새로운 욕망을 찾아 북한 사회로 떠난다. 세 번째 욕망은 은혜에 대한 사랑이다. 은혜는 정신적 억압이 난무하는 북한 사회에서의 도피처이고, 어머니의 사랑을 대신할 만큼 그의 욕망을 충족시켰다. 그러나 그의 욕망에 대한 환상은 은혜의 죽음으로 깨어지고, 그는 새로운 욕망의 대상을 찾아 떠난다. 은혜의 죽음은 이명준을 중립국이라는 도피처로 인도한다. 그러나 중립국으로 향하는 타고르호에서 동료 포로들과의 충돌은 현실에서 그가 안주할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결국 이명준은 은혜와 딸의 환영으로 보이는 갈매기를 따라 푸른 바다로 뛰어든다.  

현실과 이상의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욕망의 대상을 계속 환유하는 이명준의 행동은 결국 자아를 분열시키고, 현실에서 주체적 삶을 실패하게 한다. 자아가 분열된 상태에서 이명준의 심리 세계는 타자와의 소통이 단절되어 고립된다. 그의 심리 세계는 현실과 환상이 혼재되어 주체적 삶을 살아갈 수 없게 한다. 현실에 대한 심리적 불안이 욕망의 대상을 환치시키는 원인이 되고, 은혜와 딸의 환영이 유영하는 푸른 바다는 그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자유로운 곳으로 보인다. 이명준은 그가 찾는 이상적인 세계를 현실에서 찾지 못하고, 환상 세계로 빠져든다. 환상 속의 푸른 바다가 그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곳으로 보인다.  

원고 | 교양대학 박해랑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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