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닝포인트] 세 분의 스승님
[터닝포인트] 세 분의 스승님
  • 김진봉 교수(법경찰학과)
  • 승인 2011.09.06 1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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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크게 두 곳에서 생명의 동력을 얻는다. 하나는 육신의 생명을 주는 가정이요, 다른 하나는 사회적 생명을 주는 학교이다. 가정에서 부모님으로부터 생명을 얻으니 나에게 육신의 생명을 주신 부모님을 세상에서 가장 존경한다. 나는 학교에서 선생님을 통하여 사회적 역량을 키워 왔는데,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말씀드릴 스승님은 수 없이 많이 계시지만 특별히 세 분을 생각할 수 있다.

고등학교 3학년을 마치고 대학입시를 치르던 그 때, 나의 의지와는 달리 내 아버님은 나에게 교육대학(당시 2년제)을 추천하셨다. 경제적 여건과 군대문제를 고려하신 추천이었다. 나는 좌절에 빠져 내가 공부하던 3학년 교실의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그 때 그런 나의 모습을 발견하시고 내 어깨에 손을 얹으시며 “김군, 부모님 말씀을 듣게. 자네가 공부하려면 기회는 너무나 많아” 하시며 다독여 주시고 희망의 끈을 맺어주신 고 전원표 교장선생님의 따스한 사랑을 잊을 수 없다. 훗날 내가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이수할 때, 나를 받아 주시고 열과 성을 다하시어 제자의 앞날을 위하여 지도해 주시고 사랑을 베풀어 주신 고 서정갑 박사님의 은혜를 결코 잊을 수가 없다.

내 마음속에 나의 일생을 스승으로서 지켜보아 주시고 제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끌 어 주신 고 홍신희 교수님을 또한 잊을 수가 없다. 교육대학을 마치고 약관 20세에 청주시 모 초등학교로 첫 발령을 받아 교사로 근무하던 나는 배움에 대한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 때 야간대학 편입의 길을 일러 주시고 법학에 대하여 눈을 뜨게 인도해 주신 분이 우리 대학 총장을 역임하신 고 홍신희 교수님이시다. 야간대학을 졸업한 후 청주시내 모 중등학교에 교원으로 임용되었을 때에는 당신의 일처럼 기뻐해 주셨다. 대학원 석사과정에서는 상법전공 지도교수님으로 학문의 매력을 체득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다.

1979년 내가 결혼을 할 때에는 주례의 의식을 서 주시는 노고를 마다하지 않으셨는데, 그 때 선생님께서 주례사로 주신 말씀인 마태오복음서 7장 12절의 황금률,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원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하는 말씀은 지금도 내 마음의 좌표로 새겨두고 생활하게 하여 주셨다. 1981년 이웃대학이 종합대학으로 개편될 때, 중등교원을 사직하고 연구조교로 근무를 희망할 때 교수님께서는 망설이지 않으시고 받아 들여 주셨다.

이웃대학에서 우리 대학으로 오시어 사회교육과에서 법학을 강의 하실 때에는 언제나 평온한 미소와 함께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대화로 상대방을 편안하게 하여 주셨다. 교수님을 은사로 모시면서 나는 그 많은 말씀 중에 다른 사람을 비평하거나 힐난을 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였으니, 당신스스로 극도로 인내를 하시어 생활하시는 모습을 보이셨다. 1993년 우리 대학의 총장님으로 선출되셔서는 대학의 발전을 위하여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주셨다.

7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지금까지 떠나 본 일이 없는 학교이다. 수많이 만난 스승님 중에 이 세 분을 특히 잊을 수가 없다. 너무나 많은 학은을 받았음에도 보은하지 못한 죄송함만이 남는다. 스승님. 제자인 제가 스승님의 이상과 철학을 배워 닮아 저의 제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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