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지키기는 못 했지만 기리기는 하겠습니다.
위안부, 지키기는 못 했지만 기리기는 하겠습니다.
  • 서원대학교 신문방송사
  • 승인 2019.09.0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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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새겨지는 공간, 청주 청소년 광장
[사진] 청주 청소년 광장에 위치한 '평화의 소녀상' (제공 | 황혜영 교수)
[사진] 청주 청소년 광장에 위치한 '평화의 소녀상' (제공 | 황혜영 교수)

세종시 호수공원에서 처음 ‘평화의 소녀상’을 직접 보게 되었다. 청주에도 소녀상이 있는지 궁금했다. 찾아보니 2015년 청주에도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져 있었다. 위안부는 전 세계 20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는 239명이 일본의 위안부였던 사실을 증언하였는데 그중 20명만 생존해 있다. 위안부들 중에는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인권을 유린당하고 살해당한 경우도 많았다. 겨우 살아 돌아온 위안부들은 조국으로부터도 외면당하고 가족 곁으로 돌아가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수십 년 동안 위안부들은 가해자와 조국 양쪽에서 받은 상처의 응어리를 홀로 품어야 했다. 최근에 와서야 이들은 폭력 없는 세상에 대한 염원을 담아 자신의 상처를 내어놓기로 하였다.

청주 ‘평화의 소녀상’도 보고 싶어 며칠 전 작품이 있는 청주 청소년광장에 갔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광장 한 편에 소녀상이 있었다. 세종시에서는 앉아 보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소녀상 옆 빈 의자에 앉아보았다. 기림비를 읽고 있는데 대학생 또래 두 여학생이 얘기를 나눈다. 한 명이 “소녀상의 상징들이 뭔지 아니?” 묻는다. 둘 다 잘 모르는 듯 “혹시 설명이 있는지 찾아보자”라며 작품 주변을 본다. 나는 마침 세종시 소녀상을 보고 작품의 의미를 찾아본 터라 학생들에 다가가 “마침 최근에 작품에 대해 공부했는데 간단하게 설명해줄까요?” 하자 관심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위안부가 일본군에 잡혀갈 때 뜯긴 머리, 앉아서도 까치발을 한 모습, 삶과 죽음을 잇는 소녀 어깨 위 새, 소녀 뒤에 늘어진 할머니 그림자, 위안부들의 회복과 자유를 기원하는 나비, 그리고 소녀 옆 빈 의자에 대해 아는 대로 설명해주었다. 다시 기림비를 마저 읽고 돌아설 때 보니 두 사람이 번갈아 의자에 앉아본다. 꽃다운 소녀들의 아픈 역사를 응시하듯 여학생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그동안 무심히 흘려 보고 들었던 위안부 문제를 평화의 소녀상 덕분에 관심 있게 찾아 읽어보고 잊지 말아야 할 우리 역사의 아픔으로 깨닫게 되었다. 나도 그동안 수없이 위안부 기사나 방송을 보고 들어왔음에도 이분들의 아픔에 제대로 관심을 기울여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지금도 여전히 아픈 역사의 아주 작은 일부분을 그것도 얕게 느끼게 되었을 뿐이지만, 세종 호수공원에서 ‘평화의 소녀상’을 직접 마주하지 못했더라면 어쩌면 지금도 위안부 문제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무심히 스쳐 지나칠지도 모른다.

그날 이미 해질 때가 되어 소녀상 사진이 좀 어둡게 나왔다. 밝을 때 사진을 찍고 싶어 다음날 다시 청소년광장을 찾았다. 전날보다 소녀상이 밝게 나왔다. “속에 파묻은 걸 말할라믄 내 가슴도 터져요.” 기림비에 새겨진 위안부의 한 마디에는 무엇으로도 보상되지 못할 그날들의 상처가 녹아있다. 돌아올 때는 시내를 관통해 육거리까지 걸었다. 성안길에 걸려있던 플래카드 문구 “독립운동은 못 했지만 불매운동은 한다.”를 우리 캠퍼스 플래카드에서 다시 보며 다짐해본다. 우리 꽃다운 소녀들을 그 모진 고초로부터 “지키기는 못 했지만 기리기는 하겠습니다.”

원고 | 교양대학 황혜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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