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민주주의는 어디로?
홍콩의 민주주의는 어디로?
  • 김소윤 기자
  • 승인 2019.09.0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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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환법을 둘러싼 시위

영화 ‘영웅본색’의 배경지인 홍콩은 중국 속에서 자본주의 체제를 지키고 있는 특별자치구역이다. 영국의 식민 지배를 벗어난 이후, 중국은 50여 년간 홍콩 제도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일국양제 50년'의 원칙을 선언했다. 이에 홍콩은 1997년 이래로 독자적인 정부와 법률 아래에 운영되고 있다. 이런 홍콩에서 최근 반(反)중 시위가 거세지고 있다. 시위대와 경찰의 대치로 이어진 이번 시위는 중국 당국에서 ‘테러’로 규정할 만큼 심각한 상황에 치닫고 있다.

본 시위는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의 등장으로 시작되었다. 송환법이란 범죄자가 타국으로 도주하였을 경우, 범죄 행위를 한 국가로 범죄자를 송환하는 법을 말한다. 지난 3월, 홍콩 정부는 중국 본토, 대만, 마카오를 포함하는 송환법을 발의했다. 이에 홍콩 시민들은 중국 정부가 해당 법안을 사회주의 체제 강화 수단으로 악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하며 시위를 시작했다.

법안의 2차 심의를 앞둔 6월에 시위 참여 인원이 100만 명을 넘어섰지만, 홍콩 정부는 ‘무기한 연기’만을 내세웠다. 이러한 정부의 결정에 법안의 완전한 철폐를 요구하는 시위가 이어졌고, 200만 명의 인원이 동참했다. 1997년 홍콩 특별자치구역 설립 이래 최대 규모의 시위였다.

이에 캐리 람 행정장관은 ‘범죄인 인도 법안은 죽었다’라며 입법 절차의 중단을 선언했지만, 민주주의 운동으로 확산된 시위의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이는 결국 홍콩 정부와 홍콩 시민 간의 격렬한 대치로 이어졌다.

문제는 홍콩 경찰들의 대응이었다. 7월 21일, 백색의 옷을 맞춰 입은 100여 명의 남성들이 역사로 들이닥쳐 시위대와 시민들을 무차별 폭행하는 ‘백색테러’가 발생했다. 임산부를 포함한 45명 이상의 시민들이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홍콩 경찰은 ‘관련자를 특정할 수 없어 체포할 수 없었다’라는 의견을 내세우며 사태 진압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후 테러범들이 친(親)중 인사들과 연루되었다는 정황이 포착되자, 시민들은 규탄 시위를 벌였다. 이어진 규탄 시위에서 경찰들은 시민들에게 최루탄을 발포하는 등 폭력적인 대응을 일삼았고, 계속되는 충돌에 부상자가 속출했다. 심지어 시위 참여자가 고무탄에 맞아 실명하는 사태가 일어나며, 경찰들의 폭력적인 진압에 분노한 시위대가 경찰과 난투극을 벌였다. 그로 인해 시위가 벌어진 홍콩 공항은 지난 8월 12일부터 13일까지 출국하는 모든 항공편을 취소시켜야만 했다.

8월 21일 기준, 홍콩 경찰은 2개월간 약 2,000발의 최루탄을 사용했으며 약 700명의 홍콩 시민들을 체포했다. 홍콩 시민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우산과 고글, 마스크를 쓰고 시위를 이어나갔다.

공항 점거 시위 이후, 약 10일간 평화적인 시위가 이어졌다. 그러나 8월 25일, 시민들이 경찰에게 화염병과 돌을 던지며 저항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경찰과 시민들이 맞부딪힌 이번 시위에서 홍콩 경찰은 하늘을 향해 실탄을 발사했고, 시위대를 향해 총구를 겨눴다.

26일, 캐리 람 장관은 약 20여 명의 시위대와 비공식 회동을 가졌다. 시위대의 요구 사항에 캐리 람 장관은 ‘송환법의 완전 철폐는 어렵다'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시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의 요구 사항은 5가지이다. 송환법의 완전한 철회와 경찰의 폭력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 행정장관의 직선제, 시위를 폭동으로 규정한 것에 대한 사과와 체포된 시민들의 석방이 그 항목들이다. 그들은 완전한 민주주의를 바라보며 세계에 ‘free hongkong’을 호소하고 있다.

이번 사태에 있어 해결점을 찾기 위해선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홍콩 정부는 민주주의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되새길 필요가 있다. 시민들과의 소통을 통해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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