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용기를 갖고 '진짜' 인생을 찾아 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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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원대학교 신문방송사
  • 승인 2019.11.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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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과 진실이 공존하는 영화, '트루먼 쇼'

 

[사진] 트루먼 쇼 포스터 (배급 | 해리슨앤컴퍼니)
[사진] 트루먼 쇼 포스터 (배급 | 해리슨앤컴퍼니)

 

 

 

 

 

 

 

 

 

 

 

 

 

 

 

 

 

 

 

 

 

작중 프로그램인 「트루먼 쇼」는 주인공 ‘트루먼’이 태아일 때부터 30년 동안, 그의 삶을 24시간 생중계했다. 전 세계에 트루먼의 일거수일투족이 방송되는 일종의 관찰 프로그램 영화인 것이다. 그의 집, 직장, 이웃, 친구, 가족까지 전부 거대한 세트장이고 배우이지만, 정작 트루먼 본인만이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일상 속 물품들은 모두 협찬된 광고이고, 물 공포증마저 그가 세트장을 벗어날 수 없게 조작한 것이다.

하지만 첫사랑 실비아가 남긴 말과 더불어 하늘에서 떨어진 조명, 자신의 행동을 방송하는 라디오 등 비상식적인 일들이 연속된다. 트루먼은 의문을 품게 되고, 결국 자신만 모르던 진실을 깨닫는다.

1998년에 개봉한 ‘트루먼 쇼’는 다음 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 남우조연상, 각본상 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또한, 주인공 트루먼 역을 맡은 짐 캐리는 골든 글로브에서 최우수남우주연상을 거머쥔다. 크리스토프 감독 역의 애드 해리스는 최우수남우조연상, 음악 감독의 필립 해리스까지 최우수작곡상을 수상하며, ‘트루먼 쇼’는 골든 글로브 3관왕이라는 영예를 안는다.

이처럼 ‘트루먼 쇼’는 작품성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며, 세계명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렇다면 20년 이상이 지난 현재까지 ‘트루먼 쇼’가 회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관전 포인트>

‘트루먼 쇼’의 영화적 기법을 살펴보면, 트루먼 쇼는 3인칭 시점으로 극을 이끌고 있다. 관객이 영화 속 프로그램 「트루먼 쇼」의 시청자가 된 듯한 효과를 준다. 트루먼의 1인칭 시점으로 영화를 구성하였다면 스토리의 반전과 충격은 컸겠지만, ‘대중매체의 폭력성’이라는 영화의 본질이 흐려질 수 있음을 고려한 것이다.

기술적인 면에서도 ‘트루먼 쇼’는 자연스러움보다는 인위적인 촬영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화면에 트루먼이 꽉 차도록 당겨 찍는 줌인 기법과 망원경으로 사물을 관찰하는 느낌의 아이리스 편집이 대표적이다. 이는 관객에게 트루먼의 일상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인물들의 모습이 현실과 닮아있다는 것도 중요하다. 먼저, 트루먼은 TV 프로그램의 주인공이기 보다는 대중매체의 폭력성에 노출된 피해자라 할 수 있다. 사생활 침해는 물론, 그의 인생 전체가 짜깁기 된 각본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 시청률, 재미와 같은 타인의 목적에 이용된다. 트루먼이라는 인물은 대중매체의 문제점을 상기시킴과 동시에 오늘날의 연예인들을 떠올리게 한다.

감독인 크리스토프는 대중매체를 악용하는 가해자이다. 세트장을 탈출하려는 트루먼에게 그는 ‘현실엔 거짓이 가득하지만 씨 헤이븐은 진실만이 존재한다’라고 설득한다. 하지만 판단에 앞서 크리스토프에겐 ‘타인이 누군가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권리는 무엇이며,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철학적 사유가 필요해 보인다. 조회수와 시청률을 위해 가짜 뉴스, 연예인의 사생활을 생산하는 우리 사회의 미디어들도 크리스토프와 비슷하다. 대중의 알 권리, 또는 대중의 재미와 소비 때문이라는 이유로 도덕적 책임에서 벗어나려 한다. 

트루먼의 첫사랑인 실비아는 그가 진실에 다가서게 하는 시발점이다. 지예은(영어교육·18) 기자의 평처럼 ‘실비아가 아니었다면 트루먼은 의문조차 가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비아는 「트루먼 쇼」의 윤리적 문제를 지각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방송에 출연한 과거를 반성하려는 듯 「트루먼 쇼」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영화 상 실비아의 행동은 사랑에서 시작했지만, 트루먼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임을 보여준다. 현실에 대입해보면 연예인, 정치인, 유명인들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트루먼 쇼’의 가장 대단한 점은 시청자들의 모습을 담아냈다는 것이다. 시청자들은 단지 방송을 보기만 할 뿐이지만, 크리스토프와 같은 미디어 생산자들은 그 대중을 붙잡기 위해 새롭고 자극적인 콘텐츠를 만들어낸다.

‘트루먼 쇼’의 마지막 장면은 살벌하기까지 하다. 트루먼이 세트장을 탈출하자 시청자들은 크게 환호하지만, 이내 ‘다른 채널은 뭐 하지?’라며 채널을 돌린다. 누군가의 인생이었던 「트루먼 쇼」는 시청자들에게 있어 결국 ‘쇼’에 지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현실도 마찬가지이다. 대중의 사랑을 받았지만 누구보다 빠르게 잊히는 연예인, 뜨거운 토픽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문제들까지 군중의 관심이 쉽게 식는다는 점을 꼬집는다.

배경, 인물 등 영화의 요소들도 다각도에서 해석할 수 있다. ‘트루먼(Truman)’은 ‘True man’, 진실한 남자라고 해석 가능하다. 진실을 찾아 나서는 그의 운명과도 맞아떨어진다. 트루먼이 세트장을 탈출하기 위해 탄 배의 이름은 ‘산타 마리아(Santa Maria)호’로,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찾아 나섰을 때의 배 이름과도 같다. 거대한 세트장인 ‘씨 헤이븐’은 자신의 진정한 운명을 찾아 섬을 탈출하는 트루먼에겐 고립된 섬, 곧 감옥이다. 반면, 감독인 ‘크리스토프(Christof)’는 본인이 마치 신처럼 인위적으로 창조한 씨 헤이븐을 거짓 없는 ‘진짜’ 세상이자 천국이라 이야기한다. 이처럼 영화를 감상할 때 의미가 담긴 세심한 설정과 의미를 해석해보는 것도 ‘트루먼 쇼’의 재밌는 점이다.

 

<총평>

감상 후, 임지은(유아교육·18) 기자는 영화가 ‘극적으로 연출되었을 뿐, 우리 사회의 축소판 같다’라고 평했다. 다른 기자들도 대부분 이에 동의했다. ‘트루먼 쇼’는 불법 촬영, 사생활 침해 등과 같은 현실 문제의 일면을 날카롭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 중, 세트장의 출구는 하늘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때문에 트루먼이 계단을 오르는 모습은 마치 천국으로 가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어쩌면 트루먼에게 있어 천국은 세트장과 크리스토프라는 신에게 벗어나,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살아가는 ‘진짜’ 세상일지도 모른다.

‘트루먼 쇼’는 사회적 논란을 넘어,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철학적 관념까지 떠올리게 한다. 스스로 ‘트루먼 쇼’에 갇히게 된다면 결국 자신의 존재 자체에 의문이 들기 마련이다. 영화는 타인의 시선에 갇힌 현대인들에게 트루먼처럼 진실된 ‘나’를 찾기 위한 용기를 가져야 함을 상기시킨다.

“언제나 떠날 수 있지만 그러려고 하지 않았어. 마음만 먹으면 진실을 알 수 있는데도 시도하지 않았지”라는 크리스토퍼의 대사가 있다. 뻔한 말일 수 있지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건 언제든지 ‘나’를 찾아 떠날 수 있는 이런 뻔한 용기가 아닐까.

이제 트루먼 식의 인사로 본 기사를 마무리 지어보려 한다. 언젠가는 ‘트루먼 쇼’가 진정한 SF 영화가 되길 바라며, “못 볼지도 모르니 미리 인사하죠! 굿 애프터 눈, 굿 이브닝, 굿 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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