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훈 소설 ‘서유기’ - 자아와 세계의 갈등과 치유
최인훈 소설 ‘서유기’ - 자아와 세계의 갈등과 치유
  • 서원대학교 신문방송사
  • 승인 2019.11.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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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랑 교수의 인문학 이야기
(제공 | 문학과지성사 출판사 홈페이지)
(제공 | 문학과지성사 출판사 홈페이지)

최인훈 연작소설의 세 번째 작품 『서유기』는 그의 여러 작품 중 가장 난해한 작품에 속한다.

비사실주의 소설로서 기존의 소설과는 구조적으로 다른 내용을 표현하고 있다.

그로 인해 『서유기』는 환상성이라는 관점에서 논의가 되어 왔다. 『서유기』의 주인공 독고준은 『회색인』에서 연속되어 나타난다.

『서유기』는 독고준이 이유정의 방에서 나오는 장면으로 시작되고, 작품에 나오는 내용들이 대부분 『회색인』에서 있었던 기억을 중심으로 서술되고 있다. 이에 주인공 독고준을 동일인으로 간주한다.

『灰色人』은 시간적 배경이 1958년 가을 저녁에 시작해서 1959년 여름 저녁에 끝을 맺고, 공간적 배경은 독고준이 이유정의 방으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끝난다.

『西遊記』의 첫 장면은 ‘고고학 입문의 한 편’이라는 영화로 시작하지만, 중심 내용의 구성은 독고준이 이유정의 방에서 나와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독고준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는 복도에서 짧은 시간 동안 독고준의 사유 세계는 환상적인 공간 이동을 이루며 서사가 전개된다.

 

『서유기』의 서사 구조

1. 서문 - 이 필름은 고고학 입문 시리즈 가운데 한 편으로 최근에 발굴된 고대인의 두개골 화석의 대뇌 피질부에 대한 의미론적 해독이다.

2. 독고준은 이유정의 방을 나와 계단을 올라서 끝나는 지점에서 그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끌려간다. 복도의 어느 지점에서 풀려나서 아래로 떨어져 정신을 잃는다.

3. 쇠사슬에 묶인 독고준은 바닥에 떨어진 신문에서 당신을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자신을 찾는다는 내용을 보고, W시의 여름날을 기억하는 그녀가 자신을 찾는다고 생각한다. 어떤 남자가 들어와 사슬을 풀어주고, 칸막이가 있는 방으로 그를 안내한다.

4. ‘조선의 소리’라는 라디오 방송에서 일제는 패망하여 조선을 떠나지만, 40년의 잔악한 통치에도 불구하고 온순한 태도로 그들을 떠나보내는 반도 백성의 모습에 그들은 반도 통치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품고 일부는 반도에 남아 다시 반도를 점령할 그날을 기다리며 은인자중할 것을 권고한다.

5. 어떤 방 안에 들어서자, 300년 동안 고문을 받은 논개가 독고준을 기다리고 있다. 독고준은 논개가 기다리던 그 사람으로 그녀와 결혼해야 그녀를 구할 수 있다. 그러나 독고준은 그 여름날의 그녀를 만나러 가야 한다고 말하고 떠난다.

6. 연못가 정자에서 한 권의 책을 읽으며, 다섯 개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7. 석왕사(釋王寺)라는 정거장은 독고준이 어린 시절 수학여행을 왔던 장소로 기차가 석왕사를 떠나지만 다시 돌아오는 반복적인 이동이 이루어진다. 석왕사 정거장에서 검차원과 역장, 요물, 조봉암, 이광수 등을 만난다. 그들은 독고준이 남기를 청하지만 그는 떠난다.

8. 독고준은 꿈에서 깨어보니 자신의 몸이 구렁이가 되어 있다. 월남할 때부터 삼 남매를 책임져왔지만 동생들이 두려워하는 구렁이로 변해 괴로워하고 있다. 옛날 고향에서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정거장의 벤치에 앉아 꾼 꿈이다.

9. 표를 사기 위해 역사 안으로 들어가자, 간호원이 나타나고 그녀를 따라 복도를 지나 어느 방에 들어가니, 이순신과 헌병, 검차원, 역장 등이 있다. 그들은 독고준을 교실만한 방으로 데리고 가서 재판을 한다. 잠시 휴정하는 동안 독고준은 고향 마을에 다녀온다.

10. 속개된 법정. 독고준은 어릴 적 지도원 선생에 대한 감정과 현재의 감정에 대해 말한다. 지도원 선생은 독고준이 인민의 적으로 공화국을 공격하러 왔으므로 그에게 종신징역을 구형한다. 역장은 독고준의 변호인으로서 독고준의 시를 증거로 들며 무죄를 주장한다. 재판장은 독고준을 석방한다.

11. 긴 복도를 지나 자신의 방에 들어온 독고준은 이유정의 방 문간에 서 있다가 그대로 물러 나옴을 생각하고 부끄러워한다.

 

최인훈은 『서유기』에서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이라는 기법으로 주인공의 내면세계를 서술하고 있다.

의식의 흐름은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이동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다. 위르겐 슈람케(1995)는 의식의 흐름은 외부적 시간을 자연주의적인 지속성 속에 채워 넣고, 내적으로 체험된 시간의 심층을 소유한다고 말한다. 사실 그대로의 생생한 인지(認知)뿐만 아니라 오랜 과거의 시간대를 헤매고 다니거나 무시간적으로 상상된 신비로운 내용들을 폭로하는 회상(回想)이 문제가 된다.

그러므로 정확하게 측정되고 재현된 시간의 길이는 피상에 불과하고, 그 밑에 측량할 수 없는 정신적 시간의 깊이가 활동을 벌이는 것이다.

『서유기』에서 주인공 독고준은 이유정의 방에서 나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는 복도의 끝에서 환상 여행을 떠난다. 환상적인 공간 이동을 통하여 독고준은 기억에 잠재된 무의식 세계를 여행한다.

독고준의 여행 목적은 과거 ‘W시의 그 여름날을 기억하는 그녀’를 만나기 위한 욕망의 실현이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여행을 강행하면서 그가 깨달은 것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며,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다. 또한, 어린 시절 경험한 자아비판의 상흔은 그 시절의 교실로 돌아가 지도원 선생과 대면함으로써 치유된다.

독고준은 여행 내내 자아와 세계의 대립으로 균열이 심화되는데, 이러한 균열을 투쟁과 충돌로 목적을 쟁취하지 않고, 내면세계로 침잠한다.

그러나 반복적인 여행을 통해 내면의 상흔을 치유하고, 현실을 인식하여 자아의 성장을 이룬다.

독고준은 여행하는 동안 부끄러움을 느끼고, 여행이 끝난 후에도 자신의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반성하고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자아가 성장하고 정체성을 확립해가는 과정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아와 세계의 갈등을 빚는다. 자아와 세계가 투쟁과 충돌을 통해 화해의 결실을 이루기도 하지만, 다수의 인간은 투쟁과 충돌을 회피하고 내면으로 침잠하여 세계로부터 자신을 소외시키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현실과 당면하지 않고 사회에 대해 스스로 소외시키는 것을 성장의 한 방편으로 보는 것이 불편한 사실이지만,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다.

독고준은 이러한 현실에 살고 있는 회색(灰色)인이다. 그러나 무의식의 환상 여행을 마친 후, 자신의 방에서 비 오는 창밖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현실을 직시하고 받아들이려는 노력의 자세로 보인다.

원고 | 교양대학 박해랑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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