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 번역시집 『오뇌의 무도』와 김억의 창작적 번역
우리나라 최초 번역시집 『오뇌의 무도』와 김억의 창작적 번역
  • 서원대학교 신문방송사
  • 승인 2020.03.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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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2 = 서원대학교 교육자료박물관 소장 「오뇌의 무도」 표지와 내지)
(사진 1, 2 = 서원대학교 교육자료박물관 소장 「오뇌의 무도」 표지와 내지)

우리 대학 교육자료박물관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번역시집인 김억(1896〜?)의 「오뇌(懊惱)의 무도(舞蹈)」 1923년 재판본이 소장되어 있다. 재판에는 1921년 발행 후 절판된 초판본에 수록된 베를렌, 구르몽, 사맹, 보들레르, 예이츠 등의 시 총 85편에서 시먼스 시 한 편이 삭제되고(시먼스 역시집에 수록), 예이츠, 포르, 블레이크 시 등 10편 정도가 추가되었다. 

번역가이기 전에 시인이자 영어와 프랑스어, 에스페란토어를 이해한 것으로 여겨지는 김억은 독자로서 서구시를 접하고 그 시들을 우리 문단에 소개하고자 번역을 하게 된다. 원시 번역에서는 일본어 역을 참조했을 가능성이 커 보이며, 에스페란토어 역 참조 가능성도 있을 수 있다.

「오뇌의 무도」에 대해 오역이나 자의적 번역, 원시 일부 누락과 같은 번역의 오류와 한계 혹은 역자 취향의 편향적 작품 선별로 한국 근대시가 감상적 시풍 위주로 흐르게 한 점 등 부정적 평가도 있지만, 프랑스 상징시에 근간한 서구 근대시를 번역하여 우리 시단에 대중적으로 보급하고 한국 근대시의 형성과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점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김억은 시작품에서 시어의 리듬이나 운율, 일종의 음악성과 같은 형식과 시의 정서는 따로 떼어낼 수 없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원시를 있는 그대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외국 시 번역에서 축자적으로 단어의 의미를 옮기는 데 역점을 두기보다 시적 리듬감이 느껴지는 단어들 간의 호응을 염두에 두고 번역하고자 하였다. 「오뇌의 무도」에 번역시 7편이 실린 보들레르의 시를 보면, 원시는 각 시행 마지막 모음 사이에 운이 맞춰져 있다. <죽음의 즐겁음>으로 번역된 <유쾌한 죽은 자>의 경우, 각 4행씩인 1연과 2연은 각각 1행과 3행 사이에 ‘escargots’와 ‘os’, ‘tombeaux’와 ‘corbeaux’로, 2행과 4행 사이에 ‘profonde’와 ‘onde’, ‘monde’와 ‘immonde’로 각운이 맞춰져 있고, 각 3행씩인 3연과 4연은 3연 1행과 2행이 ‘yeux’와 ‘joyeux’로, 3연 3행과 4연 2행이 ‘porriture’와 ‘torture’로, 4연 1행과 3행이 ‘remords’와 ‘morts’로 각운이 맞춰져 있다. 김억은 서구시의 이러한 정형적인 운율을 반영하고자 주로 ‘~아라/~어라’, ‘~리라’, ‘~노라’, ‘~여라’ 등의 ‘~라 종결체’로 문장을 번역하였다. ‘~라 종결체’는 서구 정형시의 다양한 각운에 비해 제한적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당시 한국시의 정형적 운이 체계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가 원시의 음성적 자질에 녹아있는 음악성에 대응되는 우리 시어의 음악성을 발굴하고자 한 모색을 보여준다. 

<유쾌한 죽은 자> 원시에는 ‘vivant살아서’만 있는데 김억은 ‘죽어서’를 추가하여 ‘죽어서’와 ‘살아서’의 두 반의어로 정서적 대비와 리듬의 대구를 만드는가 하면, 원시의 ‘s’il est encore quelque torture여전이 무슨 고통이 느껴지는지’를 ‘고통이 잇느냐, 업느냐’로 변용하여 시행 안의 음률과 리듬을 창조한다. 보들레르의 다른 시 <금이 간 종>에서도 원시의 ‘Il est amer et doux쓰고도 달콤하여라’를 ‘얼마나 설으며, 얼마나 즐겁으랴’로 대구를 넣어 번역하여 우리말 고유의 시적 정서와 리듬을 살린다. 또 이 시에서 ‘qui palpite et qui fume요동치고 연기 나는’을 ‘확확 타는’으로, ‘alerte et bien portante민첩하고 아주 튼튼한’을 ‘오히려 충실하게 썩 튼튼하게’로, 인칭대명사 분리형 ‘Moi나’ 대신 감탄사 ‘아아’를 넣어 ‘확확’, ‘튼튼’, ‘아아’와 같은 동일한 음절의 반복이나 ‘충실하게’, ‘튼튼하게’와 같은 단어의 대구로 음성적 자질을 부각시킨다. 이처럼 서구시를 우리 문단에 소개하고자 하였던 김억은 원시의 단어나 의미를 그대로 번역하기보다 원시 내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시적 정서와 시적 음악성을 우리 언어와 정서 차원에 창조적으로 전이하고자 하였다. (황혜영, 『김억의 「오뇌의 무도」에 실린 보들레르 시 읽기』, 『호서문화논총』(29) 참조)

원고 | 교양대학 황혜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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