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 속에 담긴 찬란한 이야기를 푸는 영화, '벌새'
평범함 속에 담긴 찬란한 이야기를 푸는 영화, '벌새'
  • 서원대학교 신문방송사
  • 승인 2020.03.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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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은희들에게 건네는 울림 있는 메시지

2019년, 충무로에 새바람이 불었다. ‘벌새’라는 제목으로 개봉된 독립영화 때문이었다. 

독립영화란 상업영화 자본에 의지하지 않는 영화로서 제작자의 의도에 따라 영화가 만들어진다. 따라서 대부분 다양하고 날카로운 내용을 담고 있으며, 상업영화와는 달리 영화 각각의 느낌과 개성도 짙은 편이다.

지금까지는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둔 독립영화를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벌새는 관람객 14만 명으로, 독립영화로서 소위 ‘대박 영화’란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무엇보다 청룡영화상 각본상, 베를린국제영화제 대상, 런던 국제 영화제 서덜랜드 상 등, 각종 영화제와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며 수상 경력 28관왕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사진] 영화 '벌새' 포스터 (배급 | (주)엣나인필름)

[사진] 영화 '벌새' 포스터 (배급 | (주)엣나인필름)

벌새는 중학생 ‘은희’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은희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소하고 평범한, 그럼에도 찬란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로 극을 이끈다. 가부장적인 아빠와 그런 남편에게 지쳐버린 무관심한 엄마, 폭력을 일삼는 오빠와 새벽 몰래 남자친구를 집에 데려오는 언니까지. 한 지붕 아래에서 숟가락을 부딪치지만 모두 남남인 양 각자의 인생을 산다.

이처럼 조금 어둡지만 평범해 보이는 은희의 이야기가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으며, 한국 영화계에 획을 그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부터 벌새의 관전 포인트를 알아보도록 하자.
 
<관전 포인트>

영화는 첫 장면부터 깊은 인상을 준다. 똑같은 모양으로 줄지어진 복도식 아파트, 심부름하러 다녀온 은희는 자신이 다른 층 집을 두들긴다는 것도 모른 채 세차게 엄마를 부른다. 은희의 세상을 단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다른 집과 다를 바 없이 평범하고, 특별한 색깔조차 없는 보통의 집, 은희의 목소리에 누구도 대답해 주지 않는 그런 곳이다.

은희네는 학구열 높은 대치동에 살지만 부유하고 다복한 가정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외고 입시를 준비하는 오빠와 달리 영어를 잘 읽지도 못하는 은희는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조롱거리가 된다. 하지만 영어가 취약한 은희는 영어와 아무 상관도 없는 한문 학원에 다니고 있다. 은희에 대한 부모의 무관심을 반증하는 것이다. 은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도 모르고, 학교생활은 어땠는지 묻지조차 않는다.

이때 은희의 세상에 ‘영지 선생님’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영지라는 캐릭터는 지금까지 등장했던 은희의 주변인들과는 조금 다른 색깔을 지녔다. 흔히 말하는 명문대생이면서 담배를 피운다거나, 우리의 속마음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지 등의 의미 모를 물음까지. 교실에 둔 책들과 민중가요 ‘잘린 손가락’을 부르는 점들을 미루어 운동권이었다는 것밖엔 영지에 대해 알 수 있는 게 없다.

이런 영지는 은희에게 있어 중요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은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고민을 들어주며, 은희의 목소리에 진심으로 귀 기울인다. 은희에게 필요했던 관심과 애정이 영지를 통해 채워진다.

하지만 영지가 단순히 사랑만 주는 캐릭터라고는 할 수 없다. 철거 반대 시위 현장을 보며 집을 빼앗기는 이들이 불쌍하다던 은희에게 영지는 “함부로 동정할 수 없어. 알 수 없잖아”라고 대답한다. 동정도 상처이자 고통일 수 있다는 것, 누구의 삶도 다 알 수 없으니 함부로 판단할 수 없음을 은희에게 가르쳐준다. 영지는 은희의 ‘멘토’인 것이다.

또 영화에서 중요하게 볼 점은 바로 시대상이다. 1994년은 김일성 사망, 성수대교 붕괴 등이 있던 해이다. 영화는 사건마다 “김일성은 평생 안 죽는 줄 알았지”, “어떻게 그 다리가 무너지니?” 등의 대사로 믿기지 않는 사건임을 은연중에 암시하고 있다. 그런 믿기지 않는 사건들 사이로 보통의 평범한 은희가 산다.

영화는 김일성의 사망, 성수대교 붕괴와 같은 장면들을 통해 우리가 모두 역사의 가장 보편적인 삶 속에 살아있음을 깨닫게 한다. 1994년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은 김일성의 사망도, 성수대교 붕괴도 아닌 그 시대에 살았던 은희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처럼 말이다.

<총평>

임지은(유아교육·18) 기자는 “중학교 2학년 은희의 성장통을 낭만적으로 담아낸 영화였다. 영화를 보며 숨이 막히던 부분도 수없이 많았지만, 나의 중학교 시절을 떠올리며 위로를 받은 부분도 있어 좋았다”라고 평했다. 임지은 기자의 말처럼 벌새는 어떤 교훈보다는 위로 같은 영화였다.

‘벌새’라는 제목은 1초에 90번의 날갯짓을 하는 벌새에서 따왔다고 한다. 삼촌을 위해 공부를 포기한 엄마, 폭력을 행사하는 오빠, 가족에게는 관심도 없는 가부장적인 아빠, 우열반을 가리는 학교까지. 비정상적인 일상이라는 모순적인 말이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시대였다. 그런 삶 속에서도 은희는 벌새처럼 버텼고, 영지를 만나 한층 성숙해졌다.

만화 그리는 걸 좋아한 은희의 세상은 본인 스스로도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똑같은 모양에 똑같은 색깔이었다. 하지만 영지로 인해 바뀐 은희의 세상은 영지에게 선물 받은 새하얀 스케치북과 같다. 은희가 덧입혀 갈 그 세상에는 아마 처음으로 은희의 목소리를 들어준 영지의 색이 가장 선명할 것이다.

어쩌면 1994년과 2020년은 별반 다를 것 없을지 모른다. 누군가는 은희처럼 살았고, 또 누군가는 은희처럼 살고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어떻게 사는 게 맞는 것일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라는 영지의 편지처럼 우리는 기쁜 일과 나쁜 일을 온몸으로 맞으며 살아갈 뿐이다, 벌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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