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는 약자들의 목소리에서부터 시작됨을 알려주는, '헬프'
변화는 약자들의 목소리에서부터 시작됨을 알려주는, '헬프'
  • 최한나 기자
  • 승인 2020.04.29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용기 있게 차별과 맞서는 유쾌하고 단단한 여성들의 이야기
[사진] 영화 '헬프' 포스터 (배급사 | 소니 픽쳐스 릴리징 브에나 비스타 영화(주))
[사진] 영화 '헬프' 포스터 (배급사 | 소니 픽쳐스 릴리징 브에나 비스타 영화(주))

‘헬프’는 1960년대 미국 남부 미시시피를 배경으로, 인종차별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흑인 가정부 ‘에이블린’과 ‘미니’, 대학을 졸업하고 작가를 지망하는 백인 ‘스키터’를 중심으로 영화가 전개된다. 영화는 흑인 가정부로서, 어머니로서, 여성으로서의 삶을 모두 조명하고 있으며, 흑인이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차별과 멸시를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헬프는 2011년 개봉 당시 전미 박스오피스 3주 연속 1위에 올랐으며, ‘에이블린’ 역할을 맡은 비올라 데이비스와 ‘미니’ 역의 옥타비아 스펜서는 영·미 아카데미 시상식에 각각 여우조연상 노미네이트 및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흥행은 물론 그 작품성까지 인정받은 헬프는 지금까지도 인권 영화의 큰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코로나19로 세상의 어두운 이면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지금 같은 때, 헬프가 시사하는 것은 무엇일까. 자유를 위해 맞서는 단단하고 유쾌한 서사, 지금부터 그 면면들을 확인해보도록 하자.
 
<관점 포인트>

미시시피의 흑인 여성들은 별다른 직업을 갖지 못하고 모두 백인 가족 집의 가정부가 된다. 자신의 아이를 볼 새도 없이 백인 아이를 돌봐야 하며, 그들이 타는 버스 좌석은 정해져 있다. 화장실조차 백인과 따로 써야 하고, 백인과는 겸상할 수 없다. 밤마다 백인 우월주의자들인 KKK의 테러 위협도 견뎌야 한다.

차별이 만연한 지역사회 속에서 17명의 백인 아이를 키운 베테랑 가정부 에이블린은 아들을 인종차별로 잃었다. 미니는 집에서는 남편의 가정폭력을 당하고, 직장에서는 실내의 백인 화장실을 썼다는 이유로 해고당했다. 그런 그들 앞에 작가를 지망하는 스키터가 나타난다. 스키터는 백인임에도 흑인 가정부들을 진심으로 대하며, 그들을 인간 대 인간으로 대우한다.

스키터는 흑인 가정부들의 현실을 책에 담기 위해 에이블린에게 인터뷰를 요청한다. 하지만 당시 흑인들의 불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불법이며, 자칫하면 목숨도 잃을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에이블린은 부탁을 거절한다.

그러나 결국 스키터의 진심이 에이블린에게 닿았고, 여기에 미니까지 합세하여 그들은 인종차별을 넘어선 우정을 다지며 흑인들의 설움과 현실을 책에 담기 시작한다.

하지만 헬프가 단순히 인종차별만 다룬 작품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영화는 여성에 대한 인식과 차별이 만연했던 사회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모블리’는 어린 나이임에도 통통하고, 예쁘지 않기 때문에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 스키터의 친구들은 스키터에게 여성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야 하며, 남자가 좋아하는 여성상을 지녀야 한다고 말한다. 친구들의 주선으로 만난 남자는 스키터의 직설적인 언행에 대해 ‘당신은 일반적인 여자와 다르다’와 같은 말로 여성다움과 남성다움을 나눈다.

이렇듯 영화는 내내 불편한 대사와 행동들로 차별과 또 다른 차별로 얼룩진 사회에 대해 끊임없는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차별은 주위에 안개처럼 피어있고, 우리는 그것이 차별인 줄도 모른 채 살아간다. 헬프는 그런 ‘일상’을 파괴하는 용기이자, SOS인 것이다.

<총평>

가정부였던 에이블린은 글쓰기에 재능이 있었다. 미니는 요리를 잘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작가와 요리사라는 선택지가 주어지지는 않았다. 화장실도, 밥을 먹을 탁자도, 물을 마실 컵조차 고를 수 없었다. 무언가 선택할 수 있는 자유란 강자의 특권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차별 속에서도 에이블린은 모블리에게 매일같이 “You is kind. You is smart. You is important.”라고 말해줬다. 사랑받지 못한 모블리를 위한 말일 수 있지만,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자신과 친구들을 위한 주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영화는 가슴 뻥 뚫리는 해피엔딩은 아니다. 오히려 에이블린은 황당한 이유로 직장에서 잘리게 된다. 하지만 에이블린은 땀에 흠뻑 젖은 유니폼을 벗을 수 있게 됐고, 남의 집 아이를 돌보는 일도 그만 둘 수 있게 되었다. 아들을 지키지 못하게 만든 족쇄 같은 운명을 던져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트라시마코스는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다.”라고 말했지만, 그의 말이 무색하게 역사는 약자들의 작은 태동에서부터 변화했다. 애써 묻고 살았던 불편함은 용기의 씨앗이 되어 발아하고, 정의가 되어 다음 세대로 이어졌다.

“작중 배경인 1960년대를 넘어, 이 영화를 보고 있는 2020년의 우리 사회는 분명 그때보다 나아져 있다. 그 사실만으로도 어쩐지 조금 용기가 났다.”라는 임지은(유아교육·18) 기자의 평처럼 우리는 조금씩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끝으로, 한 이탈리아 할머니의 이야기로 본 기사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차별 없는 세상을 기원하며, 우리가 누군가에게는 고통이 아니었을지 되돌아보길 바란다.

“코로나로 인한 인종차별은 절대 안 된다. 남을 차별하면 너도 차별 당한단다. 누구도 차별 당하는 걸 원하진 않지. 코로나가 중국 탓이라고? 또 다른 병은 아프리카 탓이고? 명심해라. 코로나는 결국 사라질 것이지만, 차별은 영원히 남는다. 차별에는 치료제가 없단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