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의 스승
허준의 스승
  • 김쾌정 허준박물관장
  • 승인 2011.10.10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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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준 관련 소설과 드라마에서 가장 소설적이며 극적인 인물이 허준의 스승이다. 노정우 교수가 처음 언급한 것이었는데 신빙성이 희박한 내용이다. 이 주장을 참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소설과 드라마에서는 경상도 산음(지금의 산청)에서 활동하던 ‘유의태(柳義泰)’라는 실존하지 않았던 인물을 스승으로 설정하였다. 소설과 드라마의 파급효과가 대단하여 많은 사람들이 허준의 스승을 유의태로 잘못 알고 있어 퍽 안타까운 현실이다.

처음 노정우 교수가 진주, 산청 일대에서 실제로 활약하였고, 발음이 비슷한 유이태(劉爾泰 혹은 劉以泰)[1652~1715]라는, 허준보다 125년 후대 사람을 잘못 인식한데서 비롯되었다.

허준의 어릴 적 스승은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고 기록 또한 현재까지는 전혀 전해지지 않는다. 허준의 아버지는 본부인의 아들인 적자와 소실의 아들인 서자 즉 적서를 가리지 않고 어려서부터 제대로 된 교육을 시킨 것으로 보인다. 허준의 동생 허징(許澂) 또한 서자 출신이면서도 통정대부, 목사 등을 역임하였고, 영의정을 지낸 노수신의 사위가 된 것만 보아도 그러하다.

허준의 집안은 대대로 많은 의학자를 배출하였다. 조선 태종 때 여자의사 양성을 위한 의녀(醫女)제도를 처음 주창한 7대조 허도(許衜),『의방유취』와『향약집성방』편찬에 참여한 6대조 허종(許琮), 이조판서와 경연관을 역임하고 고향인 양천현 월촌리(현 서울 양천구 목동)로 낙향하여 사설교육기관인 ‘이정재(頤正齋)’를 설립하고 많은 인재를 양성한 허균(許稛), 외5촌당숙으로 『벽온방』∙『창진집』을 지은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과『촌가구급방』을 지은 사재(思齋) 김정국(金正國) 형제, 선조 때 허준이 어의로 있을 당시 내의원의 제조를 지낸 허욱(許頊) 같은 분들이 모두 한 집안 사람들로 양천(陽川)에 거주했던 인물들이다.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 여류시인 허란설헌의 아버지 허엽과는 10촌간이다.

허준은 이러한 높은 수준의 의학적 지식을 풍부하게 갖춘 집안 배경에다 문중 어른이 집 근처에 설립한 교육기관인 이정재에서 공부를 하는 한편 틈틈이 독학으로 의학의 깊은 경지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허준을 내의원 의관으로 천거한 유희춘은 김안국의 제자였고, 허준의 적외삼촌 김시흡은 유희춘과 친분이 두터웠으며, 허준의 아버지가 함경도 종성부사 재임시절 유희춘이 이곳에 귀양 중이었던 점, 그리고 내의원 수의 양예수가 허준이 성장한 양천에서 현령을 지낸 인연 등이 허준으로 하여금 내의원에 재직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듯하다.

내의원 입사(入仕) 후 44년간 줄곧 어의로 근무하면서 직속상관이며, 스승으로서 의술과 의료행정 전반에 대해 지도해 준 ‘양예수(楊禮壽)’가 실질적인 스승이었다. 자신의 시신을 해부하게 했다는 가짜 인물 유의태의 행위는 조선시대에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엽기적인 내용이다. ‘임진왜란 때 길가의 시신을 3차례 해부하여 의술이 더욱 정통해졌다’는 전유형(全有亨)의 기록이 유일하게 있기는 하지만, 조상과 부모님이 물려 준 머리카락∙손∙ 발톱마저도 함부로 자르거나 취급하지 않았던 유교사회에서 신체 훼손이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사항이었다.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스승의 주검[시체屍體]을 해부하는 내용은 역시 극적인 장면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하는 효과를 거두기는 하였으나, 많은 국민들은 이러한 내용을 그럴 듯하게 받아 들여 사실인양 믿고 있는 게 더 큰 문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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