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의 매미, 프로방스에서의 매미
한국에서의 매미, 프로방스에서의 매미
  • 서원대학교 신문방송사
  • 승인 2020.04.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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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프로방스 세라믹 매미 마스코트 (제공 | 황혜영 교수)
[사진] 프로방스 세라믹 매미 마스코트 (제공 | 황혜영 교수)

동일한 대상이 각 문화에서 서로 다른 고유한 상징을 지니는 경우가 있다. 매 여름이면 어느새 나타나 지천에서 시끄럽게 울다 훌쩍 떠나는 매미, 매미도 한국과 프랑스에서 각기 다른 문화적 상징을 지닌다. 

우리나라에서 매미는 예로부터 선비정신을 표상해왔다. 그 기원은 중국 진나라 시인 육운(262-303)의 <한선부寒蟬簿>에 실린 ‘매미 오덕蟬五德’에서 볼 수 있다. 시인은 매미의 대롱에서 선비의 갓끈을 연상하여 매미의 다섯 가지 습성을 다섯 가지 선비의 덕에 비유하였다. “머리 위 갓끈 있으니 학문이 있고(文), 천지 이슬 마시니 맑음이 있고(淸), 곡식 먹지 않으니 염치가 있고(廉), 거처할 집 짓지 않으니 검소하고(儉), 오고 갈 때를 지키니 신의가 있다(信).” 특히 조선 시대 선현들은 임금이 쓰던 익선관과 관리들의 관모에 매미 날개를 붙여 매미오덕을 몸소 구현하고자 하였다. 정선의 <송림한선松林寒蟬> 같은 그림에서 볼 수 있는 나뭇가지에 앉은 매미는 자연물인 매미 자체를 재현하는 것을 넘어 매미가 상기시키는 선비의 덕목을 표현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와는 달리 남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에서는 매미가 행복의 심벌이다. 매미는 섭씨 25도 이상의 더운 날씨여야 큰 소리로 울 수 있기 때문에 프랑스 중 상대적으로 여름 날씨가 더운 프로방스에서 유독 매미가 유명하다. 

‘왜 매미가 프로방스에 왔는가’라는 프로방스 지방 전설에 의하면, 먼 옛날 두 천사가 프로방스 지방에 바캉스를 왔다가, 거리에 사람도 없이 텅 비어 있고 도시가 정돈도 안 되어 있는 모습을 보았다. 천사들은 그 사정이 궁금해서 지역 신부님을 찾아갔다. 마침 올리브 나무 아래 침대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신부님이 일어나 사정을 설명해주는데, 프로방스는 많은 태양의 축복을 받다 보니 사람들이 오후에는 모두 낮잠을 자고, 일어나 저녁을 먹으면 일하기에 너무 늦어 다시 잘 시간이 된다는 것이다. 천사들은 이 사실을 하나님께 고자질하러 갔는데, 하나님은 이미 그 사정을 알고 여름에 나무에 올라가 시끄럽게 우는 매미라는 곤충을 만들어 프로방스에 보내기로 계획을 다 세워놓으셨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프로방스 사람들은 매미 소리에 낮잠을 방해받기는커녕 낮잠 동안 매미 소리를 자장가로 여기고, 매미를 자신들 행복의 상징으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이다.

오늘날 프로방스 기념품인 매미 도자기는 프로방스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여겨져 여행객들이 여행 가방에 담아 가는 마스코트가 되었다. 프로방스 매미 도자기는 1895년 루이 시카르가 프로방스를 상징하는 기념품 제작을 주문받아 만든 ‘올리브 나뭇가지에 앉은 매미’가 그 시초다. 이 최초의 매미 도자기에는 매미가 앉은 올리브 가지에 프로방스어로 ‘Lou Souleù mi fa canta(태양이 나를 노래하게 한다)’라고 적혀 있다. 이 문장은 프로방스 출신 작가 프레데릭 미스트랄(1830-1914)의 문장을 인용한 것으로, 미스트랄은 프랑스 공용어가 지방어를 흡수하면서 쇠락해가던 프로방스 언어와 삶을 재건하는 데 평생 헌신한 공로로 1904년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오늘날 프로방스 매미 도자기는 벽에 걸어놓도록 만들어진 입 벌린 매미 모양이 보편적이다. 

매 여름마다 시끄럽게 울다 어느새 뚝 소리를 그치고 떠나도 무관심했던 매미, 그 매미 소리가 올해는 언제 들려올까 귀를 종긋 세우고 기다리게 된다.

원고 | 교양대학 황혜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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