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적 삶에 체화된 불안 - 황석영 소설 『바리데기』
운명적 삶에 체화된 불안 - 황석영 소설 『바리데기』
  • 서원대학교 신문방송사
  • 승인 2020.04.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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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랑 교수의 인문학 이야기
(제공 = 창비 출판사 홈페이지)
(제공 = 창비 출판사 홈페이지)

황석영은 『바리데기』(2007)에 대해서 『손님』(2001), 『심청, 연꽃의 길』(2003)과 더불어 우리네 삶의 형식과 서사를 통해 현재의 세계가 마주친 현실을 담아낸 작업이라고 말한다. 오늘의 새로운 현상인 ‘이동’을 주제로 삼고, 되풀이되는 전쟁과 갈등의 새 세기에 문화와 종교와 민족과 빈부 차이의 이데올로기를 넘어선 어떤 다원적 조화의 가능성을 엿보고 싶었다고 한다. 

소설 『바리데기』는 작품 속에서 현실과 환상 세계를 넘나드는 환상적 요소가 강하다. 한국 고유의 무속과 불가적 가치, 그리고 확장적 측면에서 아프리카 무속과 기독교 가치를 융합하면서 환상적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현대인들이 직면한 현실과 그에 따르는 여러 내적 감정과 갈등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현대의 여러 위기 상황을 소설 속에 등장시킴으로 허구 속에서 현실 문제를 함께 논의하고자 한다.

불안이라는 감정은 실존적 감정이다. 불안은 우리의 존재와 세상에서의 위치, 삶과 죽음, 삶의 질에 대한 의미나 개념들과 관련이 있다. 우리는 다양한 경험과 문화적 가치를 통해 이러한 의미를 구성한다. 불안은 개인적 안전과 정체성뿐만 아니라 삶과 죽음의 문제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소설 『바리데기』에서 주인공 바리는 출생시점부터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자아를 손상당한다. 이후 가족해체와 탈북 과정 속의 극심한 환경적 고통, 형제와 할머니의 비참한 죽음 등은 지속적인 불안감을 발생시키고 자아인식 또한 혼란케 하였다. 그리고 소설이 끝나는 시점까지 전반적으로 불안하고 위험한 삶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으며, 소설 끝에서 담담하게 살아가는 사실적 모습을 그리면서 열린 결말을 제시하고 있다.

주인공 바리의 불행한 삶의 과정과 원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바리는 태어나면서 일곱 번째 딸이라는 이유로 버림받았다. 어머니는 핏덩이 바리를 옷가지에 싸서 숲에 내다버린다. (후에 개 칠성이가 구해준다.) 바리는 서사무가 「바리공주」와 마찬가지로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림받게 된다. 이렇게 시작된 바리의 불행이 바리가 평생 가졌던 불안감의 근원적 계기가 된다. 

둘째, 외삼촌의 등장으로 바리 가족의 행복한 삶이 파괴된다. 외삼촌이 맡은 일이 북한의 어려운 경제 사정으로 결손이라는 피해를 발생시키고 그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외삼촌은 월남한다. 결손에 대한 책임은 결국 바리 가족에게 돌아오고, 가족의 해체라는 냉혹한 현실을 겪게 된다. 

셋째, 가족의 해체는 가족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두만강을 건너 탈북한 뒤 백두산 자락의 움집에서 바리, 할머니, 언니 현이와 아버지가 생활하지만 백두산의 춥고 척박한 겨울에 병약한 현이가 비참한 죽음을 맞고, 아버지는 어머니와 언니들을 찾으러 떠나서 돌아오지 못한다. 잇따른 할머니의 죽음, 형제 같은 개 칠성이의 죽음은 어린 바리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불안과 상실감을 발생시킨다. 

넷째, 혼자 남게 된 바리의 나이는 열두 살, 바리는 일자리를 찾아 중국으로 들어간다. 아이보기 가정부에서 낙원 안마방으로 취직하고 샹 언니를 만나고, 돈을 모아 새로운 안마방을 차리지만 사기를 당해 영국으로 밀항하게 된다. 영국 가는 밀항선에서 견딜 수 없는 비인간적 상황들을 경험하면서 현실의 기억조차 상실하는 불안의 극에 치닫게 된다. 이러한 선택적 기억 상실은 바리의 삶에 대한 불안을 더욱 증폭시킨다. 

다섯째, 영국에서의 삶은 자유가 없고, 엄청난 빚을 갚아야하는 노예 생활이다. 영국사회에서 동일성을 갖지 못하고 항상 쫓기는 불법체류자로서 불안한 삶을 살게 된다. 

여섯째, 남편 알리와 이별하고, 딸 홀리야 순이를 낳았지만, 샹 언니와의 재회로 인해 딸을 잃게 된다. 홀리야 순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바리에게 최악의 불안과 상실감을 형성한다. 

일곱째, 알리와 재회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지만, 당시 사회의 테러 상황은 끝나지 않는 반복되는 현실로 직면하고, 바리의 삶은 불안의 연속임을 보여준다. 유년기의 어린나이에 접하는 가족의 죽음과 이별, 그리고 심신을 험악하게 침탈하는 주변 환경들은 바리 자신의 정체성을 혼돈할 정도로 심각하고 연속적인 불안과 상실감을 발생시키게 된다.

우리 모두는 불안을 경험하고 불안을 통제하기 위해 다양한 대처 전략들을 사용한다. 불안에 취약한 사람들은 역공포 스타일이라고 부르는 것을 통해 상황에 대처해나가기도 한다. 그들은 위협적인 상황과 부딪힐 때 실제로 느끼는 불편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보다는 외형적으로 용기, 대담함, 능란한 솜씨를 가지고 맞서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대결을 피하기도 한다. 그럼으로써 그들이 삶에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심각하게 제한을 받게 된다.

황석영은 바리가 ‘고통받은 고통의 치유사’ 또는 ‘수난당한 수난의 해결사’이기를 바란다. 바리가 경험한 고통의 깊이만큼 그 고통이 치유되기를 바란 것이다. 고통은 그 고통의 깊이만큼 깨달음을 얻고, 깨달음을 얻는 순간부터 고통에 대한 치유가 시작되는 것이다. 고통을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지만, 인간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므로 피할 수가 없다. 인간은 피할 수 없는 고통에 맞서 직면하고, 헤쳐 나가야 한다. 그러한 삶이 인생이고, 안정된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이다. 바리는 그가 맞이한 고통을 피하지 않고, 직면하여 맞서 나아가게 된다.

원고 | 교양대학 박해랑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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