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박원순 서울시장이 전직 비서를 성추행했다는 의혹과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한 지 두 달여가 지났다. 특히 그는 현재 민주당 권인숙 의원의 35년 전 성 고문 사건 변호인이었으며, 성평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인물이었기에 사회적으로 더 큰 충격을 안겼다. 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이런 성범죄 의혹과 관련해 성추행이라는 입장과 정치적으로 악용된 기획 미투라는 입장이 여전히 팽팽한 상황이다.
문제는 이런 지자체장들의 성범죄 의혹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는 점이다. 올해만 해도 4월 오거돈 전 부산시장, 그리고 지난 7월 故 박원순 서울시장까지, 이들 모두 정치·사회적 권위를 이용한 권력형 성범죄 혐의로 사회적 질타의 대상이 되었다.
권력형 성범죄란 말 그대로 자신의 사회적 권위와 권력을 이용해 성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말한다. 이런 권력형 성범죄는 정치·학교·종교·공공기관 등 그 분야를 막론해 발생하고 있다.
이런 위력에 의한 성범죄가 본격적으로 이야기된 것은 2018년 3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때부터였다. 그는 수행 비서였던 김지은 씨를 성폭행한 혐의로 법정에 섰고, 2019년 대법원 판결 결과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아 유죄가 확정됐다.
정치뿐 아니라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위력에 의한 성범죄가 만연한 것이 현실이다. 대학가도 이를 비껴가지 않는다. 스승이란 이름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들의 성범죄 논란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으며, 근래에는 지난 6월에 발생한 서울대 음대 교수의 성범죄 의혹 사례가 있었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대학 내 직원들 간의 위계에 의한 성희롱, 성추행 등과 같은 범죄도 빈번하다.
정치계와 대학가뿐 아니라 신도를 몇 년 간 성폭행한 목사를 비롯해, 미성년자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일삼은 교사들에 대한 기사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경찰청의 「경찰청범죄통계」 자료에 의하면 지난 2018년 업무상위력에의한간음 발생 건수는 30건, 업무상위력등에의한추행은 발생건수 295건으로 약 300건에 육박했다. 문제는 이런 권력형 성범죄의 특성상 자신의 정치·사회적 지위와 위력을 이용해 사건을 은폐하기 손쉽다는 점이다. 즉,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피해 사례가 더욱 많을 수 있다.
특히 권력형 성범죄는 피해자를 향한 대·내외적인 2차 가해가 심각하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사건의 경우에는 미투 고발과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안 전 지사 지지자들의 악성 댓글로 피해자 김 씨의 정신적 고통이 극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런 권력형 성범죄가 사회적으로 뜨거운 감자가 되자 ‘펜스 룰’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펜스 룰이란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아내가 아닌 여성과는 단둘이 식사하지 않겠다’라는 발언에서 시작된 것으로, 여성과의 접촉을 애초에 차단하겠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사건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 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범죄 혐의 논란을 바탕으로 여성 비서, 여성 직원 채용 등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된 것이다.
미투 운동이 일어나고 숨죽이고 있던 피해자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피해자들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날카롭기만 하다.
한편, 미투 운동을 악용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배우 곽도원 사례가 대표적이다. 곽도원은 연희단 극단 시절 여성 단원을 성희롱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적 있다. 하지만 금품을 목적으로 한 여성 단원들의 협박을 받았던 것으로 밝혀지면서 미투 폭로와 관련한 의혹도 풀리게 되었다.
미투 운동 악용 사례는 연예계뿐만 아니라 교육계, 문학계 등에서도 발생했다. 이런 사례들로 인해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연대하기 위해 시작된 미투 운동이 그 본래 목적이 변질되어 악용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는 상황이다.
미투 운동의 본질과 고통받는 피해자들을 위해서라도 미투 운동의 의도를 상기하며 성범죄에 대한 정확한 진실 규명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권력형 성범죄는 왜곡된 특권의식에서 기인한 폐쇄적인 조직 문화에 기생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와 정부의 제도적 개혁과 함께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이는 권력형 성범죄뿐만 아니라 모든 성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다.
비판과 처벌의 화살은 가해자들에게 향해야 한다. 표적은 명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