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갑질
우리 안의 갑질
  • 서원대학교 신문방송사
  • 승인 2021.05.10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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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택배 차량의 지상 진입을 금지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대해 아파트 주민들은 “택배 차량의 지상 통행은 아이와 노약자의 안전에 위험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오라는 말인데, 주차장 입구의 높이가 낮아 택배 전용차량이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한다. 오토바이 택배야 상관 없겠지만, 전용차량으로 택배를 하는 근로자들은 물건을 일일이 수레에 담아 옮겨야 한다. 택배량도 엄청날텐데, ‘시간이 돈’인 택배 근로자들에게는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택배 근로자들은 참다못해 자구책을 강구했다. 아파트 입구에 택배 물량을 내려놓을테니 주민들이 와서 찾아가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주민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택배기사들이 갑질을 한다”고. 과연 누가 갑질을 하는 걸까. 

언제부턴가 택배가 너무 많아졌다. 퀵서비스, 로켓 배송, 새벽 배송…. 우리는 빠른 것을 참 좋아한다. 빨라도 너무 빠르다. 빠름을 선호하는 건 편리함을 즐기기 위해서다. 빠른 것의 장점도 적지 않지만 그 편리함의 이면엔 누군가의 노동과 소외가 숨겨져 있다.

그럼,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아파트 주민들이 택배를 주문하지 않으면 된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택배 차량이 아파트로 들어올 필요가 사라질테니 이는 간단하면서도 근본적인 해결책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아파트 주민들은 이 해결책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왜 그럴까. 남(택배 기사)이 불편하든 말든 나(아파트 입주민)는 편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게 우리네 현실이다. 빠름과 편리함 속에 숨겨진 우리의 이중적인 욕망이다. 갑질은 이렇게 나도 모르게 우리 일상에 내면화되어 있다.  

지난해 택배 근로자들의 잇따른 죽음이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이후 택배 노사(勞使)와 정부는 사회적 합의기구를 만들어 대책을 논의해왔다. 야간 택배를 금지했고, 물건 분류 작업을 회사가 책임지도록 했다. 그러나 지금도 어두컴컴한 밤 시간에 택배 차량은 우리 주변 곳곳을 달린다. 인력 부족을 하소연하는 아우성도 그치지 않는다. 사실, 아파트에서 택배 차량의 지상 출입을 금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8년 경기 남양주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별로 달라진 것은 없다.

제도를 고치고 근무 여건을 개선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문제가 온전히 해결되는 건 아니다. 우리의 이중적 욕망이 남아 있는 한, ‘차량 진입 금지’와 유사한 사건이 또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본질을 건드리지 않고선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지나친 빠름, 지나친 편리함을 추구해온 우리의 욕망. 우리 내면에 숨어 있는 그 욕망의 이중성. 그것을 어떻게 고쳐야 할 것인지, 이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할 때다. 

 

원고 | 휴머니티교양대학 이광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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