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 된 연인, 애틋한 옥천군 문바위전설
돌이 된 연인, 애틋한 옥천군 문바위전설
  • 심은진
  • 승인 2012.08.28 01: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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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사랑 이야기
▲ 마치 웅인이 걸어다닌 듯한 발자국이 선명하게 나있는 바위
  ‘사랑해요’란 말은 누구에게나 설레는 말이다. 사랑은 옛 고전이나 전설뿐만 아니라 현대소설, 시를 비롯해 드라마, 인기 가요 등 여러 대중문화의 장르에 가장 많이 쓰이는 소재다. 사랑을 소재로 한 전설들 가운데 대부분은 아쉬움과 슬픈 결말로 끝난다. 안타까운 시련이 닥쳐야 두 남녀의 사랑이 더 소중하고 아름답게 보이고 더 기억에 많이 남는다. 옥천군 문바위에도 비극적인 사랑을 맞게 된 두 남녀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문바위에서 들려오는 두 연인의 속삭임을 찾아가보자. <편집자 주>

  충북 옥천군 청산면 한곡리 마을 뒷산에는 문바위라 불리는 넓은 바위가 있다. 전설이 전해져오는 문바위는 ‘장수바위’라고도 불린다. ‘장수바위’는 바위 위에 장수 발자국이라 전해오는 몇 개의 우묵한 발자국이 있고, 그 옆에 사람 모양을 한 두 개의 바위가 있어 장수 전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옥천 문바위에 전해오는 전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득한 옛날, 하늘에 옥황상제가 다스리는 천국이 있었다. 옥황상제는 세 명의 딸이 있었는데, 그 중 막내 공주인 계화가 가장 아름다웠다. 이 때 천국의 훌륭한 재상이 아들 웅인을 두고 있었는데, 그는 어려서부터 비범한 인물이었다.
  계화는 항상 웅인과 더불어 지냈다. 하지만 둘 사이를 질투한 악독한 대신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아들을 계화와 혼인 시켜 옥황상제의 사돈이 되려는 음모를 꾸민다. 악독한 대신은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과 합세하여 웅인의 아버지를 모함하였고, 옥황상제는 웅인의 아버지와 그의 아들을 벌주기 위해 인간세상으로 귀양을 보낸다. 하지만 웅인의 비범함을 알고 있던 옥황상제는 웅인에게 “너의 무용은 인간세상에서 당할 자가 없으니, 네 죄를 용서 받아 천국에 다시 오기 전까지 절대로 무술을 쓰지 말아라”는 명을 한다.
하지만 계화는 웅인이 귀양 간 뒤 시름시름 앓게 됐고, 이를 딱히 여겨 옥황상제는 인간 세상에 사흘 동안만 다녀오도록 허락하였다.
  한편, 웅인은 청산면 하곡리 뒷산 기슭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큰 괴물이 나타나 마을을 해치기 시작했다. 보다 못한 웅인은 “설령 죄를 벗고 천국에 올라도 이미 계화가 남의 아내가 되었을 것이니, 차라리 저 괴물과 싸워 벌을 받고 죽자”고 생각했다. 괴물과 싸우던 웅인은 괴물과 함께 죽게 되고, 사흘째 되던 날 한곡리에 도착한 공주는 웅인의 모습을 닮은 바위를 보고 자신도 그렇게 해달라고 청한다. 그 자리에 공주도 바위가 되어버렸다.
  전설이 전해오는 문바위에는 계화공주의 눈물자국과 괴물과 싸울 때 남긴 웅인의 발자국이 있고, 이 바위 옆에는 웅인과 공주의 모습과 비슷한 바위가 두 개 우뚝 서있다.
  직접 기자가 찾아간 옥천 문바위는 깊은 산새 속에 자리 잡아 있었다. 옥천 문바위는 마치 계화와 웅인이 어느 누구에게도 방해를 받지 않으려는 듯 조용한 곳이었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커다란 바위들이 곳곳에 있어 더 웅장하고 전설 속 이야기의 깊이가 느껴졌다. 문바위에는 마치 웅인이 뛰어다녔는지 거뭇거뭇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옥천 문바위 전설’의 주인공은 일반적인 전설과 달리 천상계 인물로 설정되어 보통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다. 비범한 인물인 웅인은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마을을 지켜내지만 사랑은 이루지 못한다. 전설은 평범한 인물이 아닌 웅인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전한다. 국어국문학과 이주영 교수는 “웅인의 비극은 스스로 불러왔다”며 “옥황상제가 내린 금기사항(taboo)을 지키지 못했기에 죽음을 맞이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싸우는 과정에서 사랑했던 계화의 의사나 행동들은 웅인의 죽음을 막는데 어떤 힘도 발휘하지 못했다”며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둘 사이의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아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고 죽게 되는 비극이 초래되었다”고 전했다.
  사랑이 담긴 이야기의 결말은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아쉬움과 애잔함이 담긴 비극적 사랑은 더 사람들의 머릿속에 잊히지 않고 머무른다. 몇 달 전 크게 사랑을 받았던 영화 <건축학개론>도 두 남녀의 사랑이 이뤄지지 않고, 동경하는 대상을 그리워한 채, 여운을 남기며 끝마친다. 누구나 해피엔딩을 원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 그 사랑은 더 애틋하고 기억에 남아 가슴을 적신다. 옛날 사람들은 아마 비극적 사랑 이야기가 주는 설렘을 일찍부터 느꼈을 것이다. 이들이 만들어 낸 전설 속 사랑이야말로 순수성을 가진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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