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넘는 박달재, 애달픈 그 전설속으로
울고 넘는 박달재, 애달픈 그 전설속으로
  • 김진솔
  • 승인 2012.11.19 16: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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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달재 전설을 노래하는 가사가 있다. ‘부엉이 우는 산골 나를 두고 가는 님. 돌아올 기약이나 성황님께 빌고가소 도토리 묵을 싸서 허리춤에 달아주며 한사코 우는구나 박달재의 금봉이야’. 이 노랫말은 노래 ‘울고 넘는 박달재’의 한 부분이다. 짧은 노래가락도 슬프지만 박달재 전설을 자세히 들어보면 깊은 애잔함을 느낄 수 있다. 눈물서린 박달재에 관한 전설을 찾으러 제천으로 떠나보자.  <편집자 주> 

금봉의 포옹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애잔함을 준다

  사람들에게는 어떤 사랑이 더 오래 기억될까? 사랑을 다룬 전설에서는 사랑이 이뤄진 행복한 사랑, 한없이 주는 부모의 사랑 등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기자는 비극적 사랑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리하여 제천시 봉양면과 백운면 사이에 있는 고개, 박달재에서 비극적인 사랑의 표상을 확인해 보려한다.

  제천 박달재 전설은 이러하다. 조선시대 중엽, 경상도의 젊은 선비 박달은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가던 중 지금의 평동리의 어떤 농가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이집의 딸 ‘금봉’과 눈이 맞았다. 금봉의 청초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잃은 박달과 박달의 의젓함에 마음이 통한 금봉은 금세 친해졌다. 이튿날 떠나려던 박달은 며칠을 더 묵게 되었고 밤마다 두 사람은 사랑을 키워갔다. 

  그러다 과거시험을 보러 박달은 떠나게 되고, 과거급제 후 함께 살기로 굳게 약속하지만 박달은 낙방하고 만다. 박달은 금봉을 볼 면목이 없어 찾아가지 못한다. 한편, 박달의 장원급제를 빌던 금봉은 박달이 떠나간 고갯길을 바라보며 기다리다 상사병으로 한을 품은 채 죽는다.

  장례 사흘 뒤, 평동리에 돌아온 박달은 금봉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땅을 치고 운다. 얼핏 고갯길을 쳐다보던 박달은 금봉이가 고갯마루를 향해 너울너울 춤을 추며 달려가는 모습을 보고 쫓아간다. 그러나 고갯마루에서 금봉을 와락 끌어안은 박달은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만다. 금봉의 환상을 껴안은 것이다. 이일이 있은 후부터 사람들은 박달이 죽은 고개를 박달재라 불렀다.

  기자가 찾아간 제천 박달재는 예전엔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힘들게 걸어가던 고개로 알려져 있다. 고개의 정상에는 목각공원이 자리했고 그곳에는 박달과 금봉을 닮은 목각인형과 동상이 세워져 있다. 공원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박달과 금봉이 서로 감싸 안은 동상이었다. 안겨 있는 금봉의 어깨는 이뤄지지 못한 사랑 때문인지 애처롭게 느껴졌다. 박달재 전설의 가장 아름다고도 비극적인 장면을 이곳 동상을 통해 직접 확인하니 기자가 눈으로만 읽어 내렸던 전설내용이 가슴까지 스며드는 듯 했다. 

  쉽게 만나고 헤어지는 현대 사회 풍토에서는 금봉과 박달의 간절한 사랑과 비극적인 결말이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전설 속 사랑이야기는 통해 우리 현시대 사람들에게 조상들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배울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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