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나 한 명쯤은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 늘 함께하던 친구가 있을 것이다. 부모님한테는 말 못할 고민도 친구에게는 털어놓기도 하고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서로 공유하기도 한다. 내 친구들을 지키고 그 속에서 다시 나를 지키기 위해 힘썼던 그때의 우리들. 영화 파수꾼은 ‘우정’이라는 이름하에 울고 울었던 학창시절을 자극하며 관객들에게 말을 걸어온다.
영화 <파수꾼>은 5천만원이라는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독립영화이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가치는 그 이상이다. 이는 관객이 인정한 것이며 세계가 주목한 사실이다. 독립영화 역사를 살펴보면 비교적 많은 관객이 동원됐으며 제 35회 홍콩국제영화제 FIPRESCI상 수상, 제 15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 수상까지 거머쥐었다.
주인공 기태의 자살로부터 시작되는 이 영화는 기태, 동윤, 희준은 절친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세 친구는 줄곧 붙어 다니며 서로를 믿고 의지하지만 사소한 오해가 잦은 다툼으로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이들은 진심이 아님에도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들만 한다. 이러한 미성숙한 소통의 결과로 기태는 결국 자살을 선택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의도적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려고 하진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오간 말들과 행동들이 상대에게 상처가 된다.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는 자기 자신이 오히려 아파하고 힘들어하면서 자신이 상처받았다고 생각하고 분노한다.
이를 보면서 밀려오는 답답함과 안타까움은 기자로 하여금 소통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감정이입이 쉽다는 점이다. 전반적으로 잔잔한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다. 주인공인 기태와 동윤, 희준의 상처와 감정이 연기자들에 의해 섬세하게 표현돼 자연스레 인물들에 대해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누구나 겪어봤을 학창시절 친구들과의 우정과 갈등을 소재로 만들어졌기에 더욱 공감된다. 파수꾼이라는 제목 역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J.D 샐린저가 쓴 고전 명작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이름을 차용한 이 작품은 제목이 제목인 만큼 ‘극 중 파수꾼은 도대체 누구였을까’ 궁금증을 자아낸다. 감독의 말에 의하면 ‘지키는 자’ 또는 ‘진실을 추구하는 자’라는 ‘파수꾼’의 의미를 반어적으로 쓰고 싶었다고 한다. 영화 안에서 어느 누구도 진실을 알지도, 진실을 얘기하지도 못했으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남에게 상처를 주지만 사실은 단 한사람도 자신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결국 영화에서 ‘파수꾼’은 끝끝내 등장하지 않는다. 기태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그만! 여기까지!’라고 말해주는 사람도, 세 친구의 위태로운 갈등에서 중재자 역할을 해줄 사람도,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어른들도 없다.
아이들이 노는 호밀 들판에 서서 지켜보다가 그들이 호밀 들판 끝에 있는 절벽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붙잡아서 떨어지지 않게 지켜 주고 싶었다는 소설 속 주인공. 그에 빗대어 보면 결국 이 작품은 ‘파수꾼’이 없는 한국 학교의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는 내가 느낀 감동과 여운만큼 뜨겁고 깊었다. 영화 스크린이 올라 갈 때까지 떨칠 수 없었던, 누구나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 지금 우리 사회의 파수꾼은 어디에 있는가…. 영화 <파수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