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된 가마터를 지켜온 장인의 손길
200년된 가마터를 지켜온 장인의 손길
  • 신재원 기자
  • 승인 2013.05.27 21: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북의 무형문화재를 만나다 - 박재환 옹기장

 

 

▲ 박재환 옹기장이 물레를 돌리며 옹기를 빚고 있다

물질 문명이 주는 풍요와 번영 속에서 우리의 전통 문화는 점차 그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더욱이 조상대대로 우리들의 밥상을 묵묵히 지켜왔던 옹기문화는 공장에서 찍어내는 기능성 용기틈새에서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이런 현실속에서 충북의 200년된 가마터를 6대째 지키고 있는 옹기장이 있으니 바로 충북무형문화재 제12호 박재환 옹기장이다. 이에 본사에서는 박 옹기장을 만나 전통을 지키려는 치열한 삶을 들여다보고 장인의 정신과 철학을 배워봤다.                      

                                         <편집자주> 

 

Q1. 무형문화재가 되기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
  내 나이 11살 적에 아버지께서 일본에 강제 징용으로 끌려가 불구자가 돼서 돌아왔다. 당시 여섯식구의 가장이 쓰러지다보니 형편은 점점 어려워졌다. 그 때문에 나는 옹기공장에 들어가 심부름 일을 하며 돈을 벌어야 했고, 일이 끝난 후 잘하는 도공들의 방식을 흉내내며 옹기 만드는 걸 배울 수 있었다.

    당시의 나로선 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은 없었지만 하고자 하는 의욕으로 계속 도전했고, 점점 옹기 만드는 일이 숙달 돼 20대엔 우수한 도공 중 한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 후 한 곳에서 배우는 것만으로 부족함을 느껴 여러 공장을 다니며 일을 배워 나갔고, 기술을 습득한 후 귀향해 옹기공장을 인수했다.

  옹기를 빚은지 어언 60년, 옹기장으로서 200년된 가마터를 지키며 6대째 옹기장 일을 하고 있는 점을 높이사 무형문화재로 추천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심사 당일 7명의 심사위원들 앞에서 큰 단지를 두 시간만에 만들었고 만장일치로 합격해 2003년도에 무형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 200년된 가마터를 지키며 옹기문화 전수에 힘쓰고 있다.

▲ 1250도의 온도를 견뎌내고 완성된 옹기들이 작업장 한켠에 위치하고 있다

  Q2. 한국엔 약탕관, 화로, 콩나물시루, 물두멍, 동이, 똥장군 등 다양한 종류의 옹기가 있다. 이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옹기가 있다면?
  신령님께 빌 때 쓰는 청수동이라는 옹기가 있다. 내가 천주교 신자이다 보니 청수동이를 만드는 것이 “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십계명에 위배되는 거 같아 한동안 만들지 않았다. 고민을 안고 있다가 문득 한 신부에게 청수동이를 만드는 것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러자 신부는 “솥에 밥을 올려놓고 종종 미신행위를 하는 곳이 있는데 그런 논리라면 솥 만드는 공장은 다 닫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나를 안심시켜줬고 그 다음부턴 마음 놓고 청수동이를 만들었던 것 같다.

  Q3. 옹기장으로 살면서 가장 힘든 시기가 있다면?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에 있었던 일이다. 옹기에 음식을 저장해 먹으면 납성분으로 인해 각종 질병이 발생한다는 기사가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다. 이와 관련해 정부에서도 옹기에 대한 납 허용치를 0.1ppm으로 지정한다는 법을 개정했고, 이로 인해 사람들이 옹기를 외면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도공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옹기의 원료인 흙 고유의 납성분이 0.4ppm정도인데 당시 옹기를 그 수치에 맞춰 만드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이에 이돈명 변호사를 필두로 독일 등 선진국에 옹기의 납 검출 의뢰를 부탁했고 인체에 무해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정부에 건의를 해 납 허용치를 1ppm으로 올렸고 그 후 옹기장들은 마음껏 옹기를 만들 수 있었다.

 

▲ 옹기 가마터가 200년이란 긴 세월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Q4. 충북의 무형문화재로써 앞으로의 바램이 있다면?
  이 일대가 200년 전부터 천주교를 신봉하며 옹기와 더불어 사는 교우촌이었다. 그러나 올해 6월부터 착공될 오송 제 2생명과학단지 조성사업으로 인해 가마터와 이 근방이 없어질 위기에 놓였다.

   옛날부터 옹기공장을 중심으로 살면서 지금까지 전해져 왔는데, 여기가 개발이 돼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이곳의 전통문화가 없어지는게 아쉬울 따름이다. 이 일대를 공원으로 지정해 가마터와 교우촌을 보존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많은 학생들이 관심을 가져 한국의 우수한 옹기문화가 계승되고 발전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