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탁동시
줄탁동시
  • 심은진
  • 승인 2013.09.03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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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으로 나가려 두드린다

 혼자가 아닌 너와 나, 외부와 내부의 세계가 같이 힘을 모아야 이뤄지는 것을 ‘줄탁동시(啐啄同時)’라 한다.

  ‘줄탁동시’는 알속에서 자란 병아리가 나오려고 신호를 보내면 어미닭이 밖에서 그 부위를 쪼아 부화를 돕는데서 유래됐다. 안에서 외치는 병아리는 ‘줄(啐)’, 밖에서 쪼아주는 어미닭은 ‘탁(啄)’이며, 동시에 이뤄져야 생명이 완전히 탄생하는 것이다.

  영화는 ‘줄탁’ 관계를 세 명의 주인공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다. 영화는 3가지 이야기로 구성된다. 탈북한 소년 ‘준’과 연변에서 온 소녀 ‘순희’의 이야기, 게이 커플인 ‘현’과 ‘성훈’, 마지막으로 ‘준’과 ‘현’의 만남이다.

  탈북소년 준은 돈을 벌기 위해 악착같이 주유소 일을 하지만 사장의 폭행과 제대로 돈을 주지 않는다. 같이 일하는 연변 소녀 순희 또한 사장의 성추행을 당하며 일을 한다. 둘은 사장으로부터 도망치고, 가진 것 없는 탈북자 준 앞에는 냉혹한 회색빌딩만 있을 뿐이다.

  동성애자인 현은 외로운 존재로 훈의 밀실인 고급 오피스텔에서 머물고 있다. 사랑하는 상대인 훈이 관계를 숨기는 것을 알고 노래방 도우미나 화상채팅 등 엇나가는 행동을 보이며 탈출하려고 한다. 준은 돈벌이를 하기 위해 게이와 성관계를 맺고 동영상을 찍게 된다. 이 과정에서 현을 만나게 되고, 준이 현의 집을 방문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연탄을 피우고 침대에 누워 동반자살을 선택한다.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에서 준의 기억 속에 현의 모습이 나오고 반대로 현의 기억 속에선 준의 모습이 나타난다. 현은 준의 목을 졸라 먼저 죽게 한 뒤 죽음을 선택하지만, 연탄가스를 토해내며 홀로 깨어난다.

  영화 속 세 개의 이야기가 어떻게 ‘줄탁동시’로 묶여질 수 있을까? 준과 현, 두 소년이 살고 있는 현재 공간은 어둡고 방황하는 시기다. 그 속에서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려 하지만 사회로 나가는 문은 굳게 닫혀 있다. 현실에 좌절해 자살을 선택하지만 그들이 삶의 끈을 놓지 않고 연탄가스가 가득한 밀폐된 오피스텔에서 탈출한다. 이 모습이 마치 알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병아리의 모습과 비슷하다.

  영화 포스터에도 웅크려 앉아있는 소년의 모습이 마치 알 속에 있는 병아리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어둠의 껍질을 깨고, 희망을 돋우는 시간’이라는 문구와 웅크린 소년이 줄탁동시 메시지를 더 강하게 전달한다.
마지막 장면은 밀폐된 공간에서 뛰쳐나온 현이 도로 위를 걸어간다. 화면 속에 걷고 있던 현은 어느새 준의 모습으로 바뀐다. 현이 혼자만 깨어난 게 아니라 준 역시 세상 밖으로 나왔다는 것을 표현한 것 같다. 병아리가 밖으로 나와 빛을 볼 때, 찌꺼기를 뱉어낼 때의 모습을 두 소년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파란만장했던 10대를 지나 현실에 직면한 위기의 20대를 보내고 있다. 사회는 우리에게 항상 친절하지만은 않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회에 나가기 위해 부리로 알을 쪼듯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다. 해결하기 힘든 거대한 압박감과 좌절을 혼자 힘겹게 안고 갈 때 먼저 두드려줄 누군가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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