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이 추천하는 ‘이 책 어때요?’
교수님이 추천하는 ‘이 책 어때요?’
  • 한국어문학과 정민영 교수
  • 승인 2014.04.21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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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을 생각하며 / <임꺽정> - 홍명희 作

  벽초의 ‘임꺽정’은 시대와 세대를 초월하여 어느 누구에게나 흥미진진하고 유익한 이야기를 전해 주는 소설이다. 이야기 곳곳에서 질그릇처럼 투박하고 순수한 우리 민족의 정서가 묻어 나오고 그 속에 민중의 삶과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처럼 권력형 비리와 부정이 난무하는 세태에서 소외되고 억눌리며 살아가는 민중들은 백정이라는 천한 신분으로서 바깥세상의 불의를 통쾌하게 응징하는 임꺽정의 모습을 떠올리며 가슴속에 묻어 두고 있던 욕구를 맘껏 발산하고 대리만족의 기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의 작가 벽초 홍명희는 1888년 충청북도 괴산에서 당시의 금산 군수 홍범식(1871~1910)선생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벽초는 항일 민족 협동전선인 ‘신간회’의 창립과 활동에 주도적 역할을 하다가 옥고를 치른 민족운동가이며 활발한 문학 활동으로 이광수, 최남선과 함께 흔히 '조선의 3대 천재'로 일컬어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남북 협상을 위해 월북한 후 남하하지 못하여 수십 년 동안 좌익 인사로 분류되어 왔다.

 벽초가 1930년대에 신문에 연재하였던 이 소설은 다른 역사소설들과는 달리 상층민이 아니라 하층민인 민중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소설의 시대적 배경 당시 백성들의 평범한 일상생활과 풍속들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래서 오늘날의 독자들이 당시의 시대상을 잘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우리말 어휘가 본래의 모습 그대로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어서 우리말 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임꺽정’은 조선 중기 황해도와 함경도 등지에서 활동하던 도적떼의 이야기다. 우두머리 임꺽정은 천민인 백정 출신이지만, 도적질한 곡식을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는 등 의로운 행동을 함으로써 의적으로 불리고 있다. 그가 의적이든 포악한 도적이든 부정한 방법으로 권세의 주류가 되어 살고 있는 봉건 지배층 권력자를 단호하게 응징하는 모습은 우리 민중의 가슴을 후련하게 해 준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이 혼탁해질 때마다 늘 새로운 임꺽정을 기다리며 사는지도 모른다.

 이야기의 초반부인 ‘봉단편, 피장편, 양반편’에서는 임꺽정의 출생과 성장 배경이 묘사되어 있고 당시 불평등하고 피폐한 사회 현실에서 화적패가 출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이후 ‘의형제편’에서는 아주 특별한 계기로 의형제를 맺게 된 도적의 두령들이 청석골로 들어가 조직을 이루게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때 도적의 두령들은 각기 한 분야에 특기를 갖춘 달인들로서 두목 임꺽정을 비롯하여 활의 이봉학, 표창의 박유복, 돌팔매의 배돌석, 축지법과 장기의 황천왕동, 쇠도리깨의 곽오주, 힘이 센 길막봉 등으로 모두가 각기 독특한 매력을 지닌 인물들이다.

 청석골은 민중들이 사람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며 부패한 지배층으로부터 물질적 정신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민중들만의 공동생활터전이다. 그러므로 사회에서 소외되고 삶의 터전에서 뿌리 뽑힌 계층들이 모여들어 규모가 커지면서 커다란 마을로 발전하게 된다. ‘화적편’에는 조직이 결성된 이후 벌어지는 다양한 활동상이 그려져 있다. 이 소설은 등장인물들이 벌이는 활동 하나하나를 충실히 묘사하여 보여줌으로써 독자에게 그 당시 민중들의 삶을 진솔하게 전해 줄 뿐만 아니라 몇 차례 거듭 읽어도 새로운 매력과 흥미가 넘치는 내용들로 가득 차 있다.

 벽초는 등장인물을 통하여 古人塚上今人耕(고인총상금인경-고인의 무덤 위에 오늘날 사람들이 밭을 간다는 뜻)이라 하며 돌고 도는 역사의 순환을 암시하고 있다. 민중은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온갖 역경을 이겨내며 살아가는 진정한 주체이다. 어느 집단이든 일시적 권세로 민중 위에 설 수는 없다. 꽃이 십일 동안 붉게 피어 있지 못하듯이 권력 또한 그 이치에서 벗어날 수 없다. 꽃은 오늘 피어나서 내일이면 지고 모레 피어나도 글피에는 다시 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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