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의 함성이 울려 퍼지는 통영
승리의 함성이 울려 퍼지는 통영
  • 김현희 기자
  • 승인 2014.08.25 0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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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땅에서 과거를 돌이키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지휘한 명량해전을 다룬 영화 <명량>. 개봉 12일 만에 천만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은 충무공의 매력은 ‘조선 수군 총사령부’가 있던 경남 통영에서 재현되고 있다. 영화의 흥행과 함께 통영에서는 오는 8월 14일부터 17일까지 한산대첩을 기리는 통영한산 대첩축제가 열린다. 승리의 함성이 울려퍼지던 400여년전의 통영으로 돌아가 보자.

 모두가 익히 알 듯, 이순신 장군과 임진왜란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며, 당시 이순신 장군의 승리가 없었다면 대한민국, 아니 한반도의 역사는 마침표가 찍힌 역사로 기록됐을 것이다. 충무공의 전투를 살펴보면 고작 12척의 배로, 330척이라는 싸움에서 기적적인 승리를 거둔 명량해전. 그보다 5년 앞선 1592년 7월에는 한산도 앞바다에서는 한산대첩이 펼쳐졌다. 임진왜란 당시 3대 대첩중 하나이자 세계 해전사에서도 비중 있게 다뤄지는 한산대첩은 임진왜란의 판도를 바꾼 전투였다.

 그럼 통영 앞바다에서 벌어진 한산대첩은 어떤 전투였을까? 무작정 찾아가서 확인한 통영 앞바다는 다른 바다들과는 달리 한눈에 보더라도 ‘좁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오늘날 거제대교가 가로지르는 통영과 거제사이의 좁은 물길인 ‘견내량’때문이다. 견내량 길이가 약 3k에, 폭은 약 180m, 400m까지 다양하지만 배가 다니는 ‘뱃길’로는 좁고 험난한 길이다.

 한산대첩을 조금 더 파헤쳐 보면, 당시 이순신은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이끄는 73척의 일본 함대가 견내량에 정박해 있다는 첩보를 접하게 된다. 견내량은 물길이 좁고 암초가 많아 조선의 주력함선인 판옥선으로는 싸움이 쉽지 않은 곳이었다. 이순신은 일본 함대를 한산도 앞 넓은 바다로 유인한 다음, 학익진을 펼쳐 적선을 마음껏 유린했다. 승리의 요인은 학익진 전법 뿐 아니라 조선 수군의 함선인 판옥선과 출중한 화포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산대첩으로 일본은 59척의 배를 잃었고, 이후 보급로마저 끊겨 후퇴를 거듭해야 했다. 한산대첩은 한마디로 일본과 조선의 국운이 뒤바뀐 전투였다.

 한산대첩의 승리로 인해 일본 해군은 크게 위축되었고, 수많은 전함과 물자, 병사들이 모두 수장되어 기세가 크게 꺾였으며, 산맥으로 둘러져서 육상진입이 힘들었던 전라도 해군마저 조선수군에 봉쇄되어 조선최대의 곡창지대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었고, 이는 7년에 걸친 항전동안 18만의 일본군을 맞아 전쟁을 수행한 원동력이 되었다.

 기자가 올해 방문한, 한산대첩축제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의 치열했던 전장에서 쓴 일기인 <난중일기>를 주제로 개최됐다. 비록 5일간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그 짧은 기간 동안 기자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학교생활중 역사시간에만 나오던, 또 시험에서 좋은점수를 받기위해 무작정 외우던 역사를 직접 보고, 체험하니 그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앉아서 배우는것보다 더 많은 공부가 됐다고 자신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다. 국내에서 방영하는 드라마에서조차 ‘픽션’을 방패삼아 수많은 역사왜곡을 하고 있고, 이 현실은 교과서 편찬에까지 미치고 있는 현실이다. 참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움직여야 하는 건, 역사가 만든 미래인 우리가 아닐까? 통영에 울리는 승리의 북소리를 들으며, 왜곡으로 몸살을 앓는 우리의 역사가 건강해지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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